하이데거 철학은 '존재의 의미'에 대한 근본적 물음에서 출발하여 인간의 존재 방식, 시간성, 그리고 기술 시대의 위기까지 광범위한 주제를 탐구합니다. 그의 사상은 20세기 철학사에서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했으며, 현상학, 해석학, 실존주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본 보고서는 하이데거의 주요 명언, 대표작 「존재와 시간」, 현존재 개념, 실존주의적 관점, 그리고 후기 사상인 사건 존재론을 체계적으로 분석합니다.
하이데거와 그의 사상적 배경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중 한 명으로서, 영미 철학에서 비트겐슈타인이 차지하는 위상에 버금가는 중요성을 유럽 철학계에서 가집니다. 1889년 독일 바덴 메스키르히에서 태어나 1976년 프라이부르크에서 생을 마감한 하이데거는 현상학, 해석학, 실존주의 분야에서 혁신적인 사상을 발전시켰습니다.
하이데거는 스승인 후설을 좇아 19세기를 풍미했던 실증주의를 거부했습니다. 실증주의가 주관과 객관의 분리를 당연시했다면, 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존재론에서는 주관과 객관이 구분할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고 봅니다. 그의 철학적 접근은 전통 형이상학의 존재 이해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과 재해석을 시도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존재와 시간: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
「존재와 시간」은 1927년, 하이데거가 38살일 때 출간된 책으로, 이 책이 쓰인 시점을 전후로 철학을 나눌 정도로 큰 의미가 있는 저작입니다. 이 책은 "존재에 대한 물음은 오늘날 망각 속에 빠져 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이를 통해 하이데거는 서양 철학 전통이 존재 자체에 대한 물음을 망각했음을 지적합니다.
「존재와 시간」의 핵심 주제는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으로, 이는 삶의 의미와 같은 실존적 질문이 아니라 존재론적 차원의 물음입니다. 하이데거는 인간 존재 방식을 분석하여 결국 "인간의 존재 방식은 시간성이다"라고 말하며, "시간성이 존재 이해의 지평이 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던지며 책을 마무리합니다.
하이데거는 서양 전통 철학의 시간 개념, 즉 '지금이라는 시점들의 연속'으로서의 시간을 '통속적인 시간 개념'이라 비판합니다. 그에 따르면 이 통속적 시간 개념은 시간의 근원적 형태가 아닌 파생적 형태이며, '세계시간'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세계시간이란 '지금은 밥 먹을 때다', '지금은 글을 쓸 때다'와 같은 '때의 시간'을 말합니다.
더 나아가 하이데거는 세계시간조차도 인간의 존재 방식인 '시간성'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시간성'이야말로 근원적인 시간이며, 이것이 존재 이해의 지평이 됩니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시간성을 바탕으로 존재 이해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했습니다.
존재의 다양한 의미
하이데거가 말하는 '존재'는 다양한 의미로 사용됩니다. '컴퓨터가 있다', '책이 있다'라는 의미로 쓰일 수도 있고, '생물의 존재', '인간의 존재'와 같은 넓은 의미의 존재 영역을 가리키기도 하며, 존재 영역 전체를 포괄하는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다양한 '존재' 개념을 체계적으로 통일해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고자 했습니다.
현존재(Dasein)의 분석
하이데거 철학의 핵심 개념 중 하나는 '현존재(Dasein)'입니다. 현존재란 'da(거기 혹은 그때)'와 'Sein(존재)'을 결합해 만든 말로, 영어로는 'There-Being'이라고 번역됩니다. 하이데거는 인간을 '지금', '여기에' 사는 '현존재'라고 표현하며, 이는 인간이 가장 자기다운 모습으로 존재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하이데거가 인간을 현존재라는 특별한 용어로 지칭하는 이유는 실증주의적이고 생물학적인 실체로서의 인간 개념을 거부하기 위함입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사물처럼 응고되고 결정된 존재가 아니라 의식 활동을 하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무엇을 의식하는 존재이지, 무엇에 의해 의식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현존재의 특징
현존재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 세계-내-존재: 현존재는 '세계-내-존재(In-der-Welt-Sein)'로서 살아갑니다. 여기서 '세계'란 인간에게 의미가 있는 타자와 도구의 총체이며, '내-존재'란 인간이 그러한 관계적 그물망 안에 주어져 있음을 의미합니다.
- 자기 존재의 문제화: 인간은 세계 안에 자신의 '주어져 있음'을 문제삼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매 순간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선택을 자신의 있음과 연관짓는다는 의미에서 자신의 존재를 문제삼습니다.
- 이중적 존재방식: 현존재는 세계 속에 존재하는 한 객체이면서, 동시에 세계를 마주 대하고 있는 한 주체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존재하면서도 존재의 의미를 묻습니다.
- 염려와 시간성: 현존재의 실존에는 시간성의 맥락에서 '염려(Sorge)'라는 심적 구조가 내재합니다. '지금'의 실존에는 '그때에(미래)'인 '아직 오지 않은 지금'과 '그 전에(과거)'인 '이미 지나버린 지금'이 동시에 있으며, 이러한 시간성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염려합니다.
실존주의와 하이데거의 실존 개념
실존주의(Existentialisme)는 개인의 자유, 책임, 주관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철학적, 문학적 흐름입니다. 실존주의에 따르면 인간 개인은 단순히 생각하는 주체가 아니라 행동하고, 느끼며, 살아가는 주체자입니다. 실존주의의 핵심 사상은 '실존은 본질에 선행한다'는 것, 즉 인간은 주체성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이데거는 '실존'을 현존재의 '존재 자체'로서 이야기합니다. 그는 '실존'을 현존재가 가지고 있는 특정한 '속성'으로 보지 않습니다. 하이데거가 「휴머니즘 서간」에서 자신의 철학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와 구별된다고 주장한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사르트르는 '실존'을 '본질'과 대응되는 일종의 쌍개념으로 보았던 반면, 하이데거에게 있어 '실존'이란 현존재의 '존재 자체'를 의미합니다.
본래적 실존과 비본래적 실존
하이데거는 일상 세계의 인간이 '비본래적 실존'에 빠져 있다고 보았습니다. 일상 세계의 인간은 자기 자신이 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단지 '그들'의 세계에 따라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가 '그들'의 세계를 학습하고 '그들'이 만들어 놓은 도구를 사용하며 '그들'의 논리에 따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의 세계에 따라 살면 편안하고 안락하지만, 그렇게 살면 고유한 가능성으로서 자기 자신이 될 수 없습니다. 어느 순간 '이건 아니지'하는 불안을 느끼게 되는데, 하이데거는 그러한 불안을 직시하며 자기 자신이 되려고 결단하는 것을 '양심'이라 했고, 그렇게 결단하며 사는 삶을 '본래적 실존'이라고 했습니다.
하이데거는 인간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언젠가는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자각하고 자신의 죽음을 직시할 때 비로소 본래적인 실존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만일 내가 내 삶에 죽음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당당하게 맞이한다면 나는 죽음이라는 불안과 삶의 사소함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사건 존재론(Ereignis)으로의 전환
하이데거의 사상은 1930년대 후반 이후 새로운 전환을 맞이합니다. 이 시기부터 그는 현존재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의 연구에 몰두하게 됩니다. 이러한 전환 이후 하이데거 철학에서 중요한 개념이 바로 'Ereignis'입니다.
Ereignis는 1930년대 하이데거 철학에서 기본적 개념, 심지어 가장 근본적인 개념이 됩니다. 하이데거는 1936년부터 1938년 사이에 「존재와 시간」 이후 그의 두 번째 주요 저작으로 여겨지는 「철학에의 기여(Beiträge zur Philosophie (Vom Ereignis))」에서 Ereignis 개념을 발전시켰습니다.
Ereignis는 '사건' 또는 '전유 사건(the event of appropriation)'으로 번역되며, 존재가 그 진리 안에서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명명합니다. 이 개념은 하이데거의 후기 철학 전체에 접근할 수 있는 기본적인 틀을 제공합니다. 하이데거의 후기 사상에서는 이 '성스러운 것'인 존재 속에서 인간도 신도 존재하는 것이 분명하다는 사상을 주장했습니다.
하이데거 명언과 그의 철학적 함의
하이데거의 명언들은 그의 철학적 사상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 "만일 내가 내 삶에 죽음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당당하게 맞이한다면 나는 죽음이라는 불안과 삶의 사소함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것이다."
- 이 명언은 죽음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때 오히려 삶의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역설적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 "불안은 모든 가능성을 상실할 가능성이다."
- 하이데거는 '생의 근본적 기분은 불안'이라고 말합니다. 불안은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지만, 동시에 본래적 실존으로 가는 계기가 됩니다.
- "평범함에서 진정으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끊임없이 진화하는 것이다."
- 이 명언은 '그들'의 세계에 순응하는 비본래적 실존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가능성을 실현해 가는 과정을 강조합니다.
- "기술의 본질은 결코 기술적인 것이 아니다."
- 후기 하이데거 사상의 핵심 주제인 기술 문명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으며, 기술의 본질이 단순한 도구나 방법론을 넘어선다는 인식을 보여줍니다.
- "가능성은 실제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다."
- 현존재의 존재 방식이 가능성에 열려 있다는 하이데거의 핵심 사상을 담고 있습니다. 인간에게 가능성은 단순한 현실보다 더 본질적입니다.
- "위대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종종 큰 실수를 저지른다."
- 이 명언은 철학적 사유의 위험성과 더불어, 하이데거 자신의 나치 참여와 같은 논란과 연결하여 해석되기도 합니다.
하이데거 철학의 현대적 맥락
20세기 하이데거가 파악했던 일상 세계의 '그들'의 논리는 자본의 논리와 과학기술의 논리였습니다. 모든 것이 돈에 의해 가치가 정해지고, 과학의 실증만이 유일하게 믿을 만한 것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이러한 일상 세계의 논리에 의해 인간의 존재는 '비본래적 실존'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21세기 현재에도 우리는 여전히 지난 20세기에 구축된 자본과 과학의 도구적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하이데거는 "일상성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으로 들어가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독재를 싫어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 사회, 문화, 경제적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진 '그들'의 세계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현대인의 모순적 실존 상황입니다.
결론: 존재에 대한 성찰과 실존적 결단
하이데거의 철학은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통해 인간 실존의 본질을 탐구합니다. 그는 인간을 청탁 없이 이 세계로 내던져진, 유한한, 태어남과 죽음이라는 어두운 극 사이에 처박혀진 존재로 봅니다. 이러한 실존적 상황에서 인간은 자신의 존재 가능성을 이해하고 실현해 나가야 합니다.
하이데거는 우리가 자신의 유한성과 죽음을 직시할 때, 비로소 본래적 실존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지나간 것이 아무 것도 없다면 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가올 것이 아무 것도 없다면 미래란 존재하지 않는다. 지속하는 게 아무 것도 없다면 현재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그의 말은 시간성 속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을 성찰하게 합니다.
하이데거의 철학은 '존재'에 대한 물음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와 자신의 존재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고하도록 도전합니다. 그의 사상은 단순한 학문적 담론을 넘어, 현대인이 기술 문명 속에서 어떻게 본래적 실존을 회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하이데거가 지적했듯이, "하나의 별을 향해 가는 것, 오직 그것뿐!"이라는 삶의 방향성을 찾아가는 여정이 진정한 실존의 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