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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주정치 : 올바르지 않은 방법으로 권력을 획득하여 왕이 된 뒤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

by 지식한입드림 2025. 10. 4.

참주정치는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되어 현재까지 정치학의 핵심 개념으로 남아 있는 정치체제입니다. 혈통이나 합법적 절차가 아닌 실력과 무력으로 권력을 장악한 지배자가 통치하는 체제를 말하며, 현대 정치에서도 독재정치의 원형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참주정치의 정의와 개념

참주(僭主)라는 용어는 그리스어 '튀라노스(τυραννος)'에서 유래하였으며, 본래 황통이나 왕통과 관계없이 실력에 따라 군주의 자리를 찬탈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참주를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주제넘는 임금(왕)'이라는 뜻으로, 올바르지 않은 방법으로 권력을 획득하여 왕이 된 뒤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을 지칭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에서 참주는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정권을 장악하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확산시킨 지배자 또는 그러한 독재 체제를 말했습니다. 현대적 의미에서 참주는 법이나 사람 또는 합법적인 주권에 의해 통제되지 않는 절대 권력을 의미하며, 종종 잔인한 성격을 가진 억압적인 독재자로 국가의 모든 것을 통제하고자 하는 경향을 지닌 사람을 말합니다.

참주정치의 역사적 전개

고대 그리스 시대의 참주정

고대 그리스의 참주정치는 귀족정치가 쇠퇴하기 시작한 기원전 7세기에서 기원전 3세기까지 각지에서 출현하였습니다. 이 시기는 귀족정치에서 민주정치 시대로 변모하는 과도기로서 많은 폴리스에서 경제적·사회적 변동이 있었고, 그 결과 귀족과 평민 사이의 항쟁이 격심하였습니다.

 

참주정치는 시라쿠사의 참주 히에론이 사망한 때(기원전 467년 또는 466년)로부터 디오니시오스 1세가 출현한 때(기원전 405년)까지의 약 반세기 동안을 경계로 전기(前期) 참주정과 후기(後期) 참주정으로 구분됩니다.

 

전기 참주정 시대의 참주는 대개 귀족 출신으로, 귀족 상호간에 다툼이 벌어지는 가운데 정치적으로 미숙한 민중의 지지를 받아 권력을 획득하여 비합법적으로 독재적 지위에 올랐습니다. 이들 참주 중에는 다른 폴리스의 참주나 용병의 힘을 이용한 자도 많았습니다.

아테네의 대표적 참주: 페이시스트라토스

아테네의 가장 유명한 참주는 페이시스트라토스(기원전 600년~기원전 527년)입니다. 그는 당시 아테네가 당쟁으로 혼란한 틈을 타 사병을 통해 최상위 결정 기관 아크로폴리스를 점령하여 아테네의 초대 참주로 등극했습니다.

 

페이시스트라토스는 실력을 키워온 평민 계급과 기득권을 지키려는 귀족 계급과의 알력 속에서 등장한 과도기적 존재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중앙집권을 강화시키는 정치개혁을 실시했고, 상공업과 무역을 장려하여 아테네의 경제적 번영에 기여하였으며, 올림픽과 디오니소스 제전 같은 문화정책을 통해 아테네 시민들에게 아테네인이라는 동질감과 자부심을 갖도록 했습니다.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치세는 '황금시대'라는 칭송을 받았으나, 그의 아들인 히피아스는 아버지의 능력을 따라가지 못하는 형편없는 인물이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폭정으로 변한지라 시민들의 반발로 참주정은 결국 기원전 510년경에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참주정치의 특징과 정치적 의미

참주의 권력 획득과 유지 방식

참주들은 억압받는 가난한 시민 편에 서서 귀족들에게 맞섬으로써 민중의 지지를 얻어 비합법적 수단으로 권력을 잡은 자들입니다. 모든 참주들은 귀족이었는데, 당시에는 오직 재산과 명성, 교육을 독점했던 귀족들만이 권력 가까이에 있으면서 권력의 생리를 알고 야심을 품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단 권력을 잡은 참주들은 외국인 용병에 의지하여 권력을 유지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현상을 "왕의 친위대는 시민이고, 참주의 친위대는 외국인 용병이다"라는 말로 요약했습니다. 참주들이 외국인 용병을 선호한 것은 자기의 과거를 잘 알고 있는 자국의 시민들보다는 외국인을 더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층민 지지와 선정 정치

참주정치는 하층 민중의 불만을 이용하여 그들의 지지를 얻어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한 후 독재 정치를 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참주라고 하여 폭정만을 했던 것은 아니며, 민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선정을 베풀기도 하였습니다.

 

전기 참주정 시대의 많은 폴리스에서는 상공업이 발달하였고, 문화적으로도 크게 발전하였으며, 신전·수도·축항(築港) 등의 대토목공사도 진행되었습니다. 페이시스트라토스는 모든 참주들과 마찬가지로 큰 공공사업을 일으켜 자신의 지지 기반인 가난한 민중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데에 세심한 신경을 썼습니다.

참주정치에 대한 대응: 도편추방제

참주정치 이후 집권한 클레이스테네스는 또 다른 참주정의 등장을 막기 위해 도편추방제를 고안했습니다. 도편추방제는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민주정을 유지하기 위해 실시한 정치 제도로, 독재자가 될 위험성이 있는 인물의 이름을 도편(도자기 파편 조각)에 적어 내게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도편추방의 방법은 이른 봄 시민들이 아고라에 모여 국가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높은 위험인물(주로 독재자)의 이름을 도자기 조각에 비밀로 써 놓는 것이었습니다. 6000명 이상이 지목하면 그 대상자는 10년간 추방되었으나, 시민권과 재산은 존치되었고 추방 기간이 만료되고 나면 얼마든지 아테네에 돌아와도 상관없었습니다.

정치철학에서의 참주정 평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참주정을 최악의 정치체제로 평가했습니다. 플라톤은 극단적인 무질서 상태의 민주정체가 곧 참주 정체를 불러온다고 보았으며, 참주를 국민의 동의 없이 권력을 잡고 독재를 하는 통치자로 정의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체제를 왕정, 귀족정, 제헌정과 그 타락한 형태인 참주정, 과두정, 민주정으로 분류했습니다. 그는 참주정을 "최선의 것에 반대되는 것은 최악이다. 참주정은 군주정으로부터 나온다. 참주정은 일인 지배의 타락한 형태로 못된 군주가 참주가 된다"라고 평가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타락한 정치체제에서는 정의가 조금만 존재하듯이 친애 또한 조금만 존재하며, 최악의 정치체제에서 가장 적게 존재한다. 참주정에서는 친애가 없거나 아주 조금만 존재한다"라고 말하며 참주정을 사악한 체제로 규정했습니다.

마키아벨리의 현실주의적 접근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정치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통해 참주정치에 대한 현실주의적 접근을 보여주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참주와 군주를 구분하면서, 참주는 시민의 자유를 지켜주겠다는 명목으로 권력을 잡은 후에 오히려 시민을 탄압하는 인민의 '우두머리'를 뜻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이미 권좌에 앉은 군주에게 바쳐졌지만, 특이하게도 '잠재적 참주' 또는 '권력을 쟁취하려는 인물'을 설득의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는 야심에 찬 청년들에게 '참주'의 길 대신 '시민적 자유'를 지키는 길을 설득하고자 했습니다.

참주정치의 한계와 지속성

권력 승계의 불안정성

참주정의 가장 큰 한계는 권력 승계의 불안정성이었습니다. 전기 참주정 시대의 대표적인 참주로는 코린토스의 페리안드로스, 사모스의 폴리크라테스, 아테네의 페이시스트라토스 등이 있었는데, 그들의 지배는 오래가지 못하고 대부분 2대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참주정은 2대 이상 지속된 경우가 드물었습니다.

 

역사상 참주정이 3대까지 간 적은 없었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로, 참주정은 본질적으로 불안정한 정치체제였습니다. 투키디데스가 지적한 대로 참주들은 자신의 안전과 일족의 축재에만 관심이 있었고, 외국인 용병 친위대와 호화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과도기적 정치체제로서의 의미

참주정은 귀족정과 민주정의 과도기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참주는 실력을 키워온 평민 계급과 기득권을 지키려는 귀족 계급과의 알력 속에서 등장한 과도기적 존재였기 때문에, 아테네처럼 귀족과 평민 계급을 포함한 시민집단이 성립한 시민집단 전체에 의한 폴리스가 운영되는 민주정 창출에 성공한 폴리스에서는 억압적인 독재자로 규탄받게 되었습니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참주정

고대 그리스 이후 참주정의 개념은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도 계속되었습니다. 13세기부터 르네상스 시대까지의 이탈리아반도는 공화제를 시행하고 각 도시 국가에서 부유한 가문에서 공직 선거 등을 조작하여 사실상 국가를 지배하는 참주(시뇨리아)들이 출현했습니다. 밀라노의 비스콘티 가문,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 등이 대표적이었습니다.

 

15세기 후반 피렌체 공화국의 정권을 장악한 메디치 가문은 사실상의 참주정 체제를 구축하나 피렌체 시민들에 의해 축출당하기도 했습니다. 일부 학자는 메디치 가문을 일으킨 코시모 데 메디치를 '참주'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현대적 관점에서 본 참주정치

현대 독재정치와의 연관성

현대적 의미에서 참주정치는 독재정치의 원형으로 여겨집니다. 오늘날 독재를 빼닮은 참주정의 특징들은 현대 정치에서도 발견됩니다. 참주정은 민주정과 귀족정과 치열하게 경쟁하던 정치 체제였으며, 그리스 폴리스 가운데 참주정을 경험한 곳들이 많았습니다.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생애는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독재자로서의 "참주"가 갖는 현대적 정의와는 다른 "참주"의 지배형태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그리스의 의미에서 참주는 혈통에 따라 세습되는 군주나 특정의 절차와 과정을 거쳐서 탄생되는 집정관과는 달리 스스로 쿠데타로 군주의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민주주의 발전에 미친 영향

참주정치는 역설적으로 민주주의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했습니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 사람들은 귀족정, 참주정을 두루 경험한 뒤 민주정이라는 정치체제를 실험했습니다. 참주정의 경험은 아테네인들로 하여금 한 개인에게 절대권력이 집중되는 것의 위험성을 깨닫게 해주었고, 이는 도편추방제와 같은 민주적 제도 발전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결론

참주정치는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되어 현재까지 정치학의 핵심 개념으로 남아 있는 중요한 정치 현상입니다. 비합법적 방법으로 권력을 장악한 지배자가 민중의 지지를 바탕으로 독재를 행하는 이 정치체제는 귀족정에서 민주정으로 이행하는 과도기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페이시스트라토스와 같은 일부 참주들은 선정을 베풀어 '황금시대'를 이루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참주정은 2대를 넘기지 못하고 무너지는 불안정한 정치체제였습니다. 참주정의 경험은 아테네의 민주정 발전에 중요한 교훈을 제공했으며, 도편추방제와 같은 독재 방지 제도의 탄생으로 이어졌습니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참주정치의 개념은 독재정치를 이해하는 중요한 틀로 활용되고 있으며,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경계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권력의 집중과 남용을 경계하고,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현대 민주주의의 가치는 고대 그리스의 참주정치 경험에서 얻은 소중한 교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