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니보어의 개념과 의미
옴니보어(Omnivore)는 원래 생물학적 용어로 '잡식성 동물'을 의미합니다. 라틴어로 '모든 것을 먹는 자'라는 뜻을 가진 이 단어는 'Omni(모든)'와 'Vore(먹는 것)'의 합성어로, 육식과 초식을 모두 할 수 있는 동물을 지칭합니다. 생물학적으로 옴니보어 동물들은 다양한 음식을 섭취할 수 있는 치아 구조와 소화기관을 가지고 있으며, 환경에 따라 유동적인 식습관을 가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용어가 소비 트렌드와 마케팅 분야에서 새로운 의미로 확장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경제학과 마케팅 분야에서 옴니보어는 특정한 카테고리나 경계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경험과 선택을 자유롭게 소비하는 경향을 뜻합니다. 특히 '트렌드 코리아 2025'에서는 옴니보어를 2025년의 주요 소비 트렌드 키워드 중 하나로 선정하면서, '소비의 전형성이 무너지고 있다'는 현상을 설명하는 핵심 개념으로 제시하였습니다.
옴니보어 소비자는 나이, 성별, 소득, 지역 등 전통적인 인구학적 기준에 따른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독특한 취향과 가치관에 따라 소비합니다. 마치 잡식동물이 다양한 먹이를 섭취하듯이, 옴니보어 소비자들은 여러 분야에 두루 관심을 갖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것입니다.
옴니보어 트렌드의 등장 배경
옴니보어 소비 트렌드가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여러 가지 사회 구조적 변화가 있습니다.
첫째, 인구 구조의 변화가 가장 큰 원인입니다. 인간의 기대 수명이 증가하면서 사람들은 더 오랜 기간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커졌습니다. 과거에는 20대에 취업, 30대에 결혼과 육아라는 순차적 인생 모형이 당연하게 여겨졌지만, 이제는 이러한 정형화된 생애 과업의 틀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마우로 기옌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순차적 인생모형(sequential model of life)'이 시대에 뒤처진 사고방식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면서 언제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도 늦지 않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배움의 시기와 노동의 시기를 구분 짓지 않게 되면서 더욱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10대가 창업하고 60대가 대학에 가는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가 더 이상 한정된 연령층의 소비로만 국한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둘째, 세대 간 교류가 활발해진 것도 중요한 배경입니다. 역사상 가장 많은 세대가 공존하는 현시대에서 소셜 미디어와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다른 집단의 일상을 손쉽게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는 노년층이 증가하면서 보다 많은 사람이 다양한 연령층의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습니다.
과거에는 본인이 속한 집단 내에서만 교류가 활발했지만, 이제는 20대가 재테크 채널을 보며 노후 준비를 시작하고, 70대가 20대 연애 유튜버의 영상을 보며 황혼 연애의 팁을 찾기도 합니다. 남성이 여성 인플루언서의 게시글을 보며 피부 시술에 관한 정보를 습득하는 등, 성별과 연령의 경계를 넘어선 정보 교류가 일상화되었습니다.
셋째, 디지털 기술과 플랫폼의 발전도 옴니보어 트렌드를 가속화시켰습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과 같은 알고리즘 기반 플랫폼의 확산으로 취향은 더욱 개인화되고 세분화되었습니다. 소비자들은 다양한 브랜드와 상품을 손쉽게 비교하고 탐색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특정 카테고리에 얽매이지 않는 소비가 주목받게 되었습니다.
옴니보어 소비자의 핵심 특징
옴니보어 소비자들은 기존의 소비 패턴과는 확연히 다른 특징을 보입니다.
경계 없는 소비를 추구하는 것이 첫 번째 특징입니다. 고가 브랜드와 저가 브랜드, 하이엔드 제품과 저렴한 제품을 자유롭게 혼합하여 소비합니다. 예를 들어 명품 가방을 들고 다이소에서 쇼핑을 하거나, 샤넬 백에 다이소 키링을 다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천억 부자도 다이소에 가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새로운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도 중고거래 앱을 활발히 이용하고, 온라인 쇼핑몰과 오프라인 매장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소비합니다.
취향 중심의 선택이 두 번째 특징입니다. 옴니보어 소비자들은 브랜드의 인지도나 가격보다는 '내 취향에 맞는가', '내가 좋아하는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단순히 유명하기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 감성, 개인의 가치관에 부합하는지 여부가 구매의 핵심 기준이 됩니다. 개인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중시하며, 다양한 경험을 통해 풍부한 삶을 추구합니다.
자기 주도적 소비가 세 번째 특징입니다. 과거에는 광고나 브랜드 이미지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면, 이제는 소비자가 스스로 정보를 탐색하고 비교해 선택합니다. 블로그, 유튜브, 소셜 미디어 리뷰 등을 참고하여 자신의 기준에 맞는 합리적 소비를 추구합니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수동적으로 브랜드가 정해준 틀에 갇히지 않고, 나만의 기준으로 상황에 맞게 선택합니다.
고정관념 탈피가 네 번째 특징입니다. 옴니보어 소비자는 나이, 성별, 소득, 인종 등의 집단적 구분과 경계를 넘어서 자신만의 고유한 소비 스타일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어진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전통적인 구분을 거부하며 자유롭게 소비합니다.
옴니보어 트렌드의 구체적인 사례
옴니보어 트렌드는 우리 생활 곳곳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스포츠 분야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가 관찰됩니다. 과거에는 프로야구가 주로 중장년 남성들의 취미로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지난 시즌 프로야구 고관여팬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63%를 기록했으며, 그중 2030 여성의 비율이 60%를 넘었습니다. 5년 전만 해도 중장년 남성 관중이 주류였던 야구장에 이제는 젊은 여성 팬들이 대거 몰리고 있는 것입니다.
통계청의 '사회조사'에 따르면, 성별 스포츠 경기 관람 비율은 2019년 남성 33.2%, 여성 14.3%에서 2023년에는 남성 37.3%, 여성 17.9%로 증가했습니다. 프로야구뿐만 아니라 프로농구, 프로배구 리그에서도 여성 팬의 비율이 남성 팬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스포츠는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말이 이제 완전히 옛말이 된 것입니다.
뷰티 분야에서도 성별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화장품을 소비하는 남성이 점점 많아지고 있으며, CJ올리브영에 따르면 2021~2023년 남성 회원 매출이 연평균 30% 증가했고, 지난해 남성 고객의 배송 서비스 주문액은 전년보다 98% 증가했습니다. 남성 화장품 시장 규모는 1조 원을 넘어섰으며, 미디어에서도 남성 뷰티 유튜버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음식 분야에서는 퓨전 요리와 다양한 맛의 조합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대형마트에서 식재료를 구입한 후 바로 외식을 즐기는 '잡식성 소비' 트렌드가 나타나고 있으며, 스테이크와 샐러드, 해산물 요리를 한 식탁에 올리는 것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한국식 타코, 일본식 피자와 같은 이색 조합의 퓨전 요리도 활발하게 개발되고 있습니다.
요거트 아이스크림 프랜차이즈 '요거트 아이스크림의 정석(요아정)'은 옴니보어 소비자를 공략한 대표적 사례입니다. 요거트 아이스크림에 다양한 토핑을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개인의 취향에 맞는 선택권을 제공하여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라이프스타일 분야에서도 다양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음악 분야에서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화성학을 공부하고, 힙합을 듣고 랩을 직접 만들어 보는 등 음악 전반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영화 분야에서는 다양한 장르의 영화뿐만 아니라 영화의 역사, 감독의 연출 기법, 영화 음악 등 영화 제작 과정 전반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영화를 감상합니다.
패션 분야에서는 다양한 스타일의 옷을 입는 것을 넘어, 패션 디자인, 소재, 트렌드 등 패션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가지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나가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요리 분야에서도 다양한 음식을 먹는 것을 넘어, 요리 재료, 조리법, 음식 문화 등 요리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을 쌓고 직접 요리를 만들어 먹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기업의 옴니보어 마케팅 전략
옴니보어 트렌드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들은 다양한 마케팅 전략을 펼치고 있습니다.
개인화된 서비스 제공이 가장 중요한 전략입니다. 빅데이터와 AI를 활용하여 고객의 취향과 행동을 분석하고, 맞춤형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필수가 되었습니다. 금융기관은 고객의 금융 패턴을 분석해 적합한 상품을 추천하고, 패션 플랫폼은 개인 스타일에 맞춘 아이템을 제안합니다.
패션 플랫폼 '지그재그'는 AI를 기반으로 데이터 항목을 세분화하여 고객 취향에 맞는 상품뿐만 아니라 프로모션과 배너를 모두 다르게 제안하는 초개인화 마케팅을 실현했습니다. 특히 고객이 코디 사진을 등록하면 옷의 세부 정보를 자동 추출하여 제품을 추천해 주는 기능을 통해 개인화에 특화된 기술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옴니채널 전략도 핵심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전략이 필수가 되었으며, 매장에서 QR코드를 스캔해 온라인 정보를 얻거나, 온라인에서 주문 후 오프라인에서 픽업하는 등의 서비스가 확대되고 있습니다. 스타벅스의 '사이렌 오더'는 모바일 앱을 통해 주문과 결제를 할 수 있게 하여 줄을 서지 않고도 편리하게 음료를 주문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경계를 허무는 콜라보레이션이 활발합니다. 서로 다른 분야의 브랜드가 만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협업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나이키와 디올의 '에어 디올' 협업은 하이엔드 패션과 스트리트 패션의 경계를 허물었고, 구찌와 아디다스의 '구찌다스' 협업은 럭셔리 패션 브랜드와 스포츠 브랜드의 융합으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루이비통과 슈프림, 구찌와 노스페이스의 협업도 명품 브랜드와 스트릿 브랜드의 만남으로 화제가 되었습니다.
커뮤니티 마케팅도 효과적인 전략입니다. 나이키는 '나이키 트레이닝 클럽', '나이키 런' 등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구축하여 고객들이 자신만의 운동 팁을 공유하고 다양한 스포츠 활동에 대한 경험을 나눌 수 있도록 했습니다. '나이키 바이 유(Nike By You)' 프로그램을 통해 고객이 직접 운동화를 디자인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여 개인화된 경험을 제공합니다.
다양한 제품 포트폴리오 구성도 중요합니다. 다양한 고객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는 폭넓은 제품군을 개발하는 것이 경쟁력의 핵심이 되고 있습니다. 식품 업계에서도 팔도와 미샤의 협업처럼 전통적인 한식 브랜드가 서양 요리와 퓨전한 새로운 메뉴를 선보이거나, 텍스처가 유사한 비비크림과 비빔면을 조합한 제품을 출시하는 등 이색 조합의 제품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스토리텔링과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해졌습니다. 다양한 취향과 가치를 존중하는 포용적인 메시지가 중요하며, 스토리텔링을 통해 브랜드의 가치와 철학을 전달하는 콘텐츠 마케팅이 효과적입니다. 소비자가 직접 참여하고 공유할 수 있는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이 필수가 되었으며, 다양한 채널과 포맷을 활용한 통합적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중요합니다.
옴니보어 트렌드가 가져올 변화
옴니보어 트렌드는 소비 시장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광범위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마케팅 전략의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연령, 성별, 직업 등 인구학적 특성을 기준으로 타겟 소비자 집단을 정한 후 그에 맞는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전략이 더 이상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나이, 성별, 소득, 인종 등의 집단적 구분과 경계는 옅어지고 개인적 취향이 또렷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업들은 연령과 성별 같은 인구학적 세그먼트가 아닌 고객의 취향, 상황과 같은 개별적 변수에 따른 마이크로 세그먼트 설정이 필요합니다. 타깃군이 아닌 개개인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파악하여 개성에 따른 차별화된 소비를 할 수 있도록 다양한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소비 시장의 다양화가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옴니보어 소비 현상은 나이와 성별, 소득, 인종에 따른 경계와 구분을 지우고 완전히 새로운 소비 시장을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집단보다는 개인 취미에 방점을 두고 자신의 개성과 관심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같은 연령대 안에서 오히려 취향 차이가 크게 날 수도 있고, 세대를 뛰어넘어 공통적으로 열광하는 존재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브랜드 충성도의 변화도 주목할 만합니다. 옴니보어 소비자는 브랜드 충성도가 낮고 다양한 경험을 추구하는 성향이 강합니다. 특정 브랜드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브랜드 제품을 비교하고 섞어 쓰는 소비자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는 기업들에게 지속적인 혁신과 차별화된 가치 제공의 필요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지속 가능한 소비의 확산도 옴니보어 트렌드와 연결되고 있습니다. 중고 거래와 같이 환경을 고려한 소비 패턴이 대두되며, 더 이상 새로운 상품만을 구매하는 문화가 아닌 다양한 선택지를 고려하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옴니보어 소비자들은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환경 보호와 지속 가능성을 중시하는 소비를 선택하기도 합니다.
라이프스타일의 유연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10대에도 창업하고 중년에도 학습하는 옴니보어 라이프스타일이 자연스럽게 필요해졌습니다. 배움의 시기와 노동의 시기를 구분 짓지 않고, 언제든 새로운 도전과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유연한 삶의 방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옴니보어 시대를 살아가는 법
옴니보어 트렌드는 단순한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소비 패러다임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합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 개인주의의 확산 등 여러 사회적 변화와 맞물려 있어 장기적인 트렌드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개인으로서는 자신의 취향과 가치관을 명확히 인식하고, 타인의 시선이나 사회적 통념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소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새로운 경험을 적극적으로 시도하며, 자신만의 스타일과 정체성을 구축해 나가는 것이 옴니보어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입니다.
기업으로서는 소비자의 마음을 읽는 마케팅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합니다. 특정 타겟층만을 바라보는 대신, 다양한 소비자가 자유롭게 넘나드는 '열린 선택지'를 제공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개인화된 경험 제공, 다양한 제품 라인업 구성, 그리고 소비자와의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옴니보어 소비자들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것이 앞으로의 비즈니스 성공의 열쇠가 될 것입니다.
옴니보어는 경계 없는 소비, 나 중심 소비, 취향 중심 소비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보여주는 신호탄입니다. 변화하는 소비 환경에 발맞춰 적응하는 것이 성공의 열쇠가 될 것이며, 다양성과 개방성을 핵심 가치로 삼아 소비자에게 더 많은 선택지를 제공하고 여러 가지 경험을 동시에 즐길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합니다.
옴니보어 트렌드는 우리에게 고정관념을 버리고 더욱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을 요구합니다. 나이, 성별, 소득 등 전통적 경계를 허물고, 개인의 취향과 가치를 존중하며, 다양한 경험을 통해 풍요로운 삶을 추구하는 것이 2025년 이후의 새로운 소비 문화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