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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헨지 : 영국 윌트셔 주 솔즈베리 평원에 위치한 선사 시대의 거석 유적, 유네스코 세계유산

by 지식한입드림 2025. 5. 29.

스톤헨지는 영국 윌트셔 주 솔즈베리 평원에 위치한 선사 시대의 거석 유적으로, 기원전 3000년부터 2000년 사이에 건설되었다. 높이 8m, 무게 50톤에 달하는 사르센석과 웨일스에서 운반된 블루스톤으로 구성된 이 유적은 1986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고대 건축 기술과 천문학적 지식을 집약한 인류의 문화적 유산으로 평가받는다.

역사적 배경과 건축 단계

3단계 건축 과정

스톤헨지는 약 1,500년에 걸친 세 단계의 건축 과정을 거쳤다.

  1. 1단계(기원전 3100년경): 원형 도랑과 흙 둑을 조성하며, 나무 기둥과 소형 블루스톤을 배치했다. 이 시기 오브리 홀(56개의 구덩이)이 파여졌으며, 화장된 유골이 매장되어 신석기 시대의 공동묘지로 활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2. 2단계(기원전 2600년경): 웨일스 프레슬리 산에서 운반된 블루스톤을 사용해 내부 원형 구조를 재정비했다. 이 단계에서 의식용 통로인 '애비뉴'가 조성되어 에이번 강과 연결되었으며, 동지 일출과 정렬된 설계가 도입되었다.
  3. 3단계(기원전 2500-1500년경): 말보로 다운스의 웨스트 우즈에서 채석된 사르센석(평균 20톤)으로 외부 원과 말발굽형 삼석탑(5쌍)을 건설했다. 최상층 석재는 곡선 처리되어 원근법을 적용한 것으로, 당시의 정밀한 공학 기술을 보여준다.

재료의 이동과 기술

블루스톤은 웨일스에서 225km 이상 떨어진 지역에서 운반되었으며, 사르센석은 25km 거리의 웨스트 우즈에서 유래했다. 2020년 반환된 시추 샘플의 X선 형광 분석을 통해 이 사실이 확인되었고, 당시 인력이 나무 썰매와 강을 이용해 석재를 이동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석재의 정교한 가공은 청동기 시대 도끼와 단검 모양의 조각(72점)으로 증명되며, 2012년 레이저 스캔을 통해 풍화된 표면에서도 확인되었다.

구조적 특징과 천문학적 정렬

계층적 설계

스톤헨지는 직경 98m의 외부 도랑을 시작으로, 30개의 사르센석으로 이루어진 외부 원(셰일 서클), 블루스톤 내부 원, 말발굽형 삼석탑으로 구성된다. 중앙의 제단석은 동지 일몰과 하지 일출 시 태양 빛이 힐스톤을 통해 정확히 비추도록 설계되었다. 이러한 정렬은 농경 사회의 계절적 의식과 연결된 것으로 해석된다.

주변 유적과의 연관성

스톤헨지는 단독 유적이 아닌 종합적 종교 단지의 일부였다. 3km 떨어진 우드헨지는 나무 기둥으로 구성된 유사 구조물로, 의식 행렬 경로인 '애비뉴'와 연결되어 있다. 또한, 2.4km 거리의 더링턴 월스에서는 신석기 시대 주거지와 동물 뼈가 발굴되어 대규모 축제가 열렸음을 시사한다.

목적에 대한 학술적 논쟁

천문대와 종교적 기능

하짓날 태양 정렬은 스톤헨지가 천문 관측용으로 사용되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그러나 2008년 발굴된 240구의 화장 유골은 매장지로서의 역할을 부각시킨다. 유골의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일부는 웨일스 등 원거리에서 유입된 것으로 밝혀져 순례지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치유 중심지 설

블루스톤의 재료적 특성이 치유력과 연결되어 병자들이 모인 장소였을 것이라는 가설이 있다. 웨일스산 청석은 중세 시대까지 의료용으로 사용되었으며, 유골에서 발견된 질병 흔적이 이를 뒷받침한다.

현대적 조사와 보존 노력

고고학적 발견

2015년 수중 탐사에서는 애비뉴 끝단에 블루스톤헨지 유적이 확인되었고, 2023년 라이다 기술로 지하 수로망이 발견되며 관개 시스템의 존재가 추정되었다. 1958년 복원 작업 시 사용된 철근과 콘크리트는 유적의 원형성 논란을 야기했으나, 2013년 A344 도로 철거로 원형 경관이 부분적으로 회복되었다.

문화적 계승

현대 드루이드 교도들은 매년 하지에 스톤헨지에서 일출 의식을 진행하며, 이 유적이 여전히 살아있는 종교적 공간으로 기능함을 보여준다. 2025년 현재, 디지털 복원 프로젝트를 통해 3D 모델링과 VR 체험이 구현되어 학술적 연구와 교육에 활용되고 있다.

결론

스톤헨지는 단순한 거석 유적을 넘어 신석기 시대부터 청동기 시대에 걸친 인류의 기술·종교·사회적 역량을 응집한 상징이다. 천문학적 정렬, 장거리 석재 운반, 복합적 의식 공간의 설계는 당시 사회의 고도화된 조직력을 반영한다. 최근의 과학적 분석은 고대인들의 여정을 재구성하는 동시에, 유적 보존과 현대적 해석의 균형을 요구한다. 스톤헨지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문화적 다리로서, 인류 공동의 유산으로서 그 가치를 지속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