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수전 손택 :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지성인이자 작가, 평론가, 사회운동가

by 지식한입드림 2025. 11. 20.

수전 손택의 생애와 성장 배경

유년기와 교육 과정

수전 손택(Susan Sontag)은 1933년 1월 16일 미국 뉴욕주 뉴욕에서 유대계 가정에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 잭 로젠블랫은 폴란드에서 이민 온 유대인으로 무역업을 하는 사업가였으나, 손택이 5살 때 폐결핵으로 사망했습니다. 어머니는 육군 대위였던 네이선 손택과 재혼하였고, 이에 따라 손택은 계부의 성씨를 쓰게 되었습니다.

유년기를 투산과 로스앤젤레스 등지에서 보낸 손택은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지적 능력을 보였습니다. 그녀는 7살 때 이미 자신이 작가가 될 것임을 알았다고 회고하였습니다. 이러한 조숙함은 그녀의 학업 성취로도 이어져, 15살의 어린 나이에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 입학하였습니다.

학문적 성취와 초기 경력

버클리에서 1년간 수학한 후 시카고 대학교로 옮겨 문학, 역사, 철학을 전공한 손택은 17살에 시카고 대학교 강사였던 필립 리프와 결혼하여 아들 1명을 낳았습니다. 시카고 대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하버드 대학교에 들어가 1954년에 영문학, 1955년에 철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25세에는 하버드대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파리 대학교, 옥스퍼드 대학교, 소르본 대학교 등에서 수학한 후 1959년부터 뉴욕 시립 대학교, 세라 로렌스 대학교, 컬럼비아 대학교 등에서 철학 강의를 하였습니다. 1959년 필립 리프와 이혼한 손택은 이후 여러 여성들과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문학 세계와 주요 저작

소설가로서의 활동

손택은 1963년 첫 소설 《은인(The Benefactor)》을 발표하면서 문학계에 데뷔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꿈과 현실의 경계를 탐구하는 실험적인 소설로, 그녀의 문학적 재능을 보여주었습니다. 1967년에는 두 번째 소설 《죽음 도구(Death Kit)》를 집필하여 실존적 죽음과 삶의 부조리를 다루었습니다.

손택의 생애 마지막 소설인 《인 아메리카(In America)》는 1999년에 출간되어 전미도서상 소설 부문을 수상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19세기 후반 미국으로 이민 온 폴란드 국민 여배우 헬레나 모드제예브스카에게서 영감을 받아, 현실 속의 이상향을 찾아 나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손택은 자궁육종 치료까지 뒤로 미룰 정도로 이 작품에 애착을 보였으며, 암이 재발했다는 것을 알게 된 뒤에도 이 소설을 마무리하는 데 온 힘을 쏟았습니다.

평론가로서의 업적

1964년 시사지 '파르티잔 리뷰'에 수필 《캠프에 관한 단상(Notes on 'Camp')》을 발표한 것이 손택의 평론가로서의 본격적인 시작이었습니다. 이 수필이 '타임'에서 다뤄지면서 여러 지식인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 수필에서 손택은 기괴한 것을 좋아하는 태도를 '캠프'라고 정의한 후 현대 팝아트 문화를 캠프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1966년 발표한 수필 《해석에 반대한다(Against Interpretation)》는 손택을 세계적인 비평가로 만들어 준 작품입니다. 이 수필에서 그녀는 예술을 해석하는 행위를 '지식인들이 세계에 가하는 복수'라고 규정하면서 예술을 심미적으로 체험해야 한다는 반해석론을 주장하였습니다. 손택은 서구 미학의 전통을 이루던 내용과 형식의 구별,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구별에 반기를 들며 화려한 명성을 얻었습니다.

사진과 이미지에 대한 통찰

《사진에 관하여》의 핵심 내용

1977년 출간된 《사진에 관하여(On Photography)》는 손택의 대표작 중 하나로, 약 4년에 걸쳐 '뉴욕타임스 서평'에 기고한 여섯 편의 에세이를 새롭게 가다듬어 발표한 책입니다. 출판되자마자 각계의 찬사를 받으며 3개월 동안 6만 4천부가 팔리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1978년에는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비평부문을 수상하였습니다.

이 책에서 손택은 20세기의 주요 기록매체인 '사진'의 본질에 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녀는 사진이 현실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포착한다는 생각에 반대하며, 사진도 회화나 데생처럼 이 세계를 해석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사진을 찍는 행위는 남을 훔쳐보며 성욕을 느끼는 관음증처럼 때로는 은밀하게 때로는 노골적으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더욱 부추기는 법이라고 분석하였습니다.

사진의 윤리적 차원

손택은 "인류는 여지껏 별다른 반성 없이 플라톤의 동굴에서 꾸물거리고 있다"며 사진이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새로 가르쳐주었다고 설명합니다. 사진은 무엇이 볼 만한 가치가 있는가, 우리에게 관찰할 권리가 있는 것은 무엇인가 등을 둘러싼 관념 자체도 바꿔버렸고 더 넓혀주었습니다. 이는 바라본다는 것의 근본 원리, 중요하게는 바라본다는 것의 윤리의 영역의 확장입니다.

카메라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이 흥미로운 사건들, 그래서 사진에 담길 만한 가치가 있는 사건들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실제로 사진은 포착된 경험이며 카메라는 이처럼 경험을 포착해두려는 심리를 가장 이상적으로 이뤄주는 의식의 도구입니다.

질병과 은유에 대한 비판

《은유로서의 질병》의 주장

1978년 유방암 판정을 받고 2년 뒤에 쓴 《은유로서의 질병(Illness as Metaphor)》은 질병이 단순히 개인이 가진 증상이나 통증이 아니라 사회학적 기호라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손택의 아버지는 결핵으로 목숨을 잃었고, 손택 자신은 암 때문에 오랜 투병 생활을 거쳤기에 이 주제는 그녀에게 매우 개인적인 것이었습니다.

손택은 결핵과 암에 대해 19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부당한 오해 속에서 잘못된 은유가 활용되어 왔는지를 분석하였습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질병이 은유가 아니라는 점, 그리고 가장 진실한 방법으로 질병을 다루려면 질병을 은유적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에 될 수 있는 한 물들어서는 안 되며, 그런 사고방식에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질병 은유의 폭력성

손택은 "암을 둘러싼 신화에 따르자면, 자신이 감정을 지속적으로 억압할 경우에 암이 발생한다"는 등의 잘못된 은유가 환자들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만든다고 비판하였습니다. 질병에 걸린 환자는 질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고통만으로도 너무도 힘든데, 이런 그들이 잘못된 은유로 상처를 입는다면 더 큰 고통을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1988년에 출판된 《에이즈와 그 은유(AIDS and Its Metaphors)》에서는 에이즈에 대한 사회적 은유를 분석하며, 질병에 대한 정보와 진실의 영역에 은유가 개입될 경우의 위험성을 강조하였습니다. 손택은 질병에 관한 거짓 정보들이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고 있음을 지적하였습니다.

타인의 고통과 전쟁 이미지

《타인의 고통》의 문제의식

2003년에 출간된 《타인의 고통(Regarding the Pain of Others)》은 손택의 유작으로, 전쟁 사진을 보고 느끼는 분노와 혐오 같은 감정에 대해 분석하였습니다. 손택은 이런 감정들이 교육된 감정이라고 말하며, 먼 곳에서 벌어지는 사진을 통해 우리는 수많은 고통을 접하지만 타인의 고통이 자신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지적하였습니다.

단지 연민만을 느끼는 것은 우리가 그 고통의 원인과 무관하다고 여기는 것이며 우리가 무고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대중매체가 타인의 고통을 전달하고, 사람들은 그러한 타인의 고통에 점점 익숙해집니다. 손택은 참혹한 전쟁을 하나의 스펙터클로 소비해 버리고 마는 현대의 일상을 예리하게 지적하였습니다.

공감과 연민의 차이

손택은 연민과 공감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하였습니다. 연민은 도와준 다음에 "괜찮아지는 것"이지만, 공감은 "내가 그 사람의 고통을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내가 그곳에 태어났다면 나도 그렇게 되었을 것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머나먼 타인의 고통을 3인칭이 아닌 2인칭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 손택의 주장입니다.

이 책은 2001년 발생한 9·11 사태와 연관이 있으며, 그 사건 이후 미국이 주도해서 이라크와 테러리즘과의 전쟁을 벌리게 되는 상황에서 손택은 직접적인 비판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타인의 고통을 스펙터클로 소비하는 현대사회를 비판한 이 작품은 손택이 마지막으로 발표한 주요 저작이 되었습니다.

사회운동가로서의 행보

반전운동과 인권옹호

손택은 1966년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기고문을 발표하면서 사회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녀의 현실 참여는 베트남 전쟁이 한창 중이던 1966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베트남 전쟁의 폭력성과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 등을 폭로하였습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때는 방한해 구속된 한국 문인들을 석방할 것을 요구했으며, 살만 루시디가 《악마의 시》를 써서 이란 당국으로부터 사형 판결을 받자 즉각 항의하고 구명운동에 열성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손택이 국제 펜클럽 미국지부 회장을 맡았을 당시인 1988년에는 서울을 방문해 한국 정부에 구속 문인의 석방을 촉구했습니다.

사라예보에서의 연극 공연

손택의 가장 상징적인 행동주의는 1993년 사라예보 내전 현장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보스니아가 독립을 선언하자 사라예보에 폭격이 가해졌고, 25만 명이라는 희생자를 남기며 보스니아를 '유럽의 킬링필드'로 불리게 한 내전이 시작되었습니다. 내전 소식을 들은 손택은 사라예보로 날아가 박격포 소음이 울리는 어둠 속에서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를 연출하고 공연하였습니다.

전쟁 속에서도 예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 이 공연은 전 세계의 관심을 사라예보로 집중시켰습니다. 손택은 사라예보 한가운데서 연극을 공연해 반전 메시지를 전했으며, 이후 사라예보에는 수전 손택 거리가 조성되었습니다. 2001년 9·11 테러와 뒤이어 일어난 이라크 전쟁에서는 조지 W. 부시 정부를 크게 비판하는 글을 뉴욕 타임즈에 기고하여 살해 협박까지 받았습니다.

다방면의 예술 활동

영화감독과 연극연출가

손택은 극작가, 영화감독, 연극연출가로도 활동하였습니다. 그녀는 다큐멘터리를 비롯한 4편의 영화를 완성한 감독이기도 하며, 앤디 워홀의 독특한 초상필름을 비롯해 사진작가 로버트 메이플도프의 작품에서는 기꺼이 모델이 되어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1983년에는 우디 앨런이 감독한 페이크 다큐멘터리 《젤리그(Zelig)》에 출연하기도 하였습니다.

손택이 남긴 유일한 희곡 《앨리스 인 베드(Alice in Bed)》는 2022년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되어 20세기 문화의 중심이었던 손택의 날카로운 지성을 한국 관객들에게 선보였습니다. 이 작품은 병상에 누운 앨리스라는 인물을 통해 자유와 억압, 삶과 죽음의 문제를 탐구합니다.

수상 경력과 명예

손택은 1987년부터 1989년까지 국제펜클럽 회장을 맡았으며, 1977년 전미비평가협회상, 1999년 전미도서상, 2003년 독일 출판 평화상을 수상하였습니다. 2003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독일출판협회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녀의 저서는 현재 32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히고 있습니다.

손택은 앤디 워홀의 팝아트를 비롯한 전위예술을 설명할 만한 이론을 제시하고 로베르 브레송, 장 뤽 고다르의 영화를 통해 자신의 이론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였습니다. '새로운 감수성의 사제'이자 '뉴욕 지성계의 여왕', 그리고 '대중문화의 퍼스트레이디'로 미국 문화의 중심에 우뚝 섰습니다.

개인적 삶과 성 정체성

여성과의 관계

손택은 17살에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지만 결혼 생활은 삭막했습니다. 그녀의 일기에는 결혼에 대한 절망감이 가득하며, 자아를 말살하고 개성을 말소시키는 배타적 사랑과 결혼제도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결국 1959년 필립 리프와 이혼하였습니다.

영국 유학길에 H라는 여성을 만나며 손택은 그간 억눌렀던 자신의 성적 욕망을 폭발시켰습니다. 열다섯 살의 일기에서 자신의 동성애 성향을 고백하는 손택은 그로 인한 죄책감과 혼란스러운 심경을 토로하지만, H라는 여성과의 만남을 기폭제로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며 섹슈얼리티에 눈을 뜨게 됩니다. 손택에게 사랑과 성애의 발견은 '살아도 좋다'는 허가와 다름없었습니다.

애니 레보비츠와의 관계

1989년부터 2004년까지 손택은 세계적인 사진작가 애니 레보비츠(Annie Leibovitz)와 동성 파트너로서의 관계를 유지하였습니다. 레보비츠는 손택의 정신적 스승이자 가장 친한 친구, 그리고 뮤즈였습니다. 둘은 함께 요르단의 페트라 유적, 이집트 피라미드, 런던, 파리 등을 여행하면서 수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레보비츠의 작품 중 다수에서 수전 손택의 얼굴을 찾을 수 있으며, 그녀의 마지막 모습과 죽은 후의 모습까지도 사진에 담았습니다. 2004년 12월 28일, 레보비츠가 병든 아버지를 보러 플로리다에 간 사이에 수전은 뉴욕에서 사망했습니다. 이들의 15년 궤적은 함께 한 시간의 기록이자, 일란성 쌍둥이 같은 두 사람의 예술적 여정을 보여줍니다.

말년의 투병과 죽음

암과의 투쟁

손택은 평생 세 번 암의 침탈을 받았습니다. 1978년에 유방암 판정을 받고 화학요법을 받았으며, 이후 자궁육종이 재발하였습니다. 손택은 소설 《인 아메리카》를 마무리하기 위해 자궁육종 치료까지 뒤로 미뤘고, 암이 재발됐다는 것을 알게 된 뒤에도 이 소설을 마무리하는 데 온 힘을 쏟았습니다.

2004년 3월 암 판정을 받은 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9개월간 손택은 '나'라는 존재를 뛰어넘어야 한다며 이를 악물었습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감각을 비판했던 그는 죽기 전 골수성 백혈병으로 자신의 고통과 치열하게 맞서 싸우는 운명에 처하게 됩니다. 손택은 "내가 꼭 베트남 전쟁이 된 것 같다. 저들은 나에게 화학무기를 들이댄다. 나는 환호해야겠지"라고 말했습니다.

존엄한 마지막

손택은 마지막 순간까지 존엄을 잃지 않았습니다. 30년 전 유방암으로 화학요법을 받던 시기에 쓴 일기에는 "명랑하라. 그리고 감정에 휘말리지 말라. 차분하라. 슬픔의 골짜기에 이르렀을 때는 날개를 펼쳐라"고 적혀 있습니다. 손택은 생애 내내 스스로를 불리한 확률을 뒤집는 사람이라고 믿으며 살았습니다.

수전 손택은 2004년 12월 28일 미국 뉴욕주 뉴욕에서 백혈병으로 죽었습니다. 죽은 후 뉴욕 타임즈는 그녀에 대한 부고 기사에 '여왕이 영면하다'라고 제목을 붙였습니다. 무려 2번의 암과의 투병 과정조차 거뜬히 이겨냈던 그녀가 골수성 백혈병으로 결국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는 비보가 전해졌을 때 전 세계의 지식인들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유해는 파리의 몽파르나스 공동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수전 손택의 주요 저서

저서명 출간년도 장르 주요 내용
은인(The Benefactor) 1963년 소설 데뷔 소설, 꿈과 현실의 경계를 탐구
해석에 반대한다(Against Interpretation) 1966년 평론집 예술작품의 해석에 반대하는 미학 이론
죽음 도구(Death Kit) 1967년 소설 실존적 죽음과 삶의 부조리를 다룬 작품
급진적 의지의 스타일(Styles of Radical Will) 1969년 평론집 급진적 예술과 문화에 대한 비평
사진에 관하여(On Photography) 1977년 에세이 사진 매체의 본질과 윤리에 대한 고찰
은유로서의 질병(Illness as Metaphor) 1978년 에세이 질병에 대한 잘못된 은유 비판
사투르누스의 별자리(Under the Sign of Saturn) 1980년 에세이 20세기 지식인들에 대한 평론
에이즈와 그 은유(AIDS and Its Metaphors) 1988년 에세이 에이즈에 대한 사회적 은유 분석
인 아메리카(In America) 1999년 소설 전미도서상 수상작, 이상향을 찾는 이야기
타인의 고통(Regarding the Pain of Others) 2003년 에세이 전쟁 이미지와 타인의 고통에 대한 윤리적 성찰

현대 문화에 대한 영향과 유산

비평 이론의 혁신

손택은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충돌이라 일컬어지던 1960년대 서구 문화의 급격한 혼란을 충돌이 아닌 변화와 혼융의 관점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예술을 인간의 이념과 도덕에 복무시키거나 문화를 좋은 것과 나쁜 것, 고상한 것과 천박한 것, 진지한 것과 가벼운 것 등으로 나누는 이분법에 대한 반발이 그녀의 핵심 주장이었습니다.

손택의 《해석에 반대한다》는 기존 상식과 체제에 대한 전복성이 돋보이는 기념비적인 글입니다. 1964년 발간된 이 글을 통해 손택은 자신의 이름을 영미 문학계와 사회 전반에 알렸으며, 이윽고 문학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해석이라는 전통적 권위에 맞서 이해의 주체를 비평가에서 독자에게 준 것은 롤랑 바르트의 '저자의 죽음'에 버금가는 충격이었습니다.

페미니즘과 여성의 해방

손택은 평생 '여성'이라는 주제를 관통하는 글들을 발표하였습니다. 여성이 나이 들며 느끼는 수치심, 아름다움에 강요된 강박, 섹슈얼리티 등 '이 세계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의 진실을 명료한 언어로 짚어냈습니다. "여성의 아름다움에는 오직 소녀의 아름다움이라는 한 가지 기준만 허용된다. 남성은 이런 압박을 느끼지 않는다. 남성은 아무 불이익 없이 나이 드는 것을 '허용' 받는다"며 뿌리 깊은 성차별을 고발하였습니다.

1970년대 손택은 "해방된 여성의 책임은 다른 여성들과 연대하는 것"이라고 한 발 더 나아갔습니다. 여성이 이런 압박에 시달리지 않으려면 사회가 덧씌운 '여성성'이란 신화를 벗고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손택의 문장은 단호하고 불필요한 수사를 거부하지만, 그 단호함 안에는 변화를 바라는 깊은 애정이 깃들어 있습니다.

손택은 문화적 아이콘으로서 자유와 지성이 신비하게 공존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녀는 미국 사회에서 영화배우도 인기가수도 아닌 작가로 40여 년의 세월 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매혹과 권위의 여성 지식인, 영화감독, 연극연출가, 비평가, 노골적이고 정치적인 작가였던 수전 손택은 일생 동안 비난과 찬사를 한몸에 받았지만 누구보다 용감하게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켰습니다.

손택의 작업은 계속해서 전 세계의 학자, 예술가, 활동가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문학, 사진, 문화 비평에 대한 그녀의 공헌은 지적 지형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으며, 사회 정의에 대한 그녀의 확고한 헌신은 현 상태에 감히 도전하려는 사람들에게 등불 역할을 합니다. 진정한 지성주의에는 경계가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손택의 놀라운 삶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