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덕대왕신종은 통일신라 경덕왕이 부왕 성덕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추진하여 혜공왕 7년(771)에 완성된 거종으로, 흔히 에밀레종 또는 봉덕사종으로도 불립니다.
개요와 정의
명칭과 지정
성덕대왕신종은 신라 성덕왕의 공덕을 기리는 의미에서 명명되었고, 1962년 12월 20일 대한민국 국보 제2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봉덕사에 걸렸던 종이라는 점에서 봉덕사종으로도 불렸으며, 민간 설화의 영향으로 에밀레종이라는 별칭이 널리 통용됩니다.
현재 공식 명칭은 성덕대왕신종이며, 학술·행정 문서에서는 국보 제29호로 표기됩니다.
완성과 연대
경덕왕이 대종 주조를 시작했으나 생전에 완성하지 못했고, 손자인 혜공왕 7년(771년) 12월에 완성되었다는 기록이 전합니다.
이 과정은 삼국유사 관련 기사와 명문(銘文)에 의해 사료적으로 보완되며, 왕실 발원 대종의 제작 경위를 상세히 보여줍니다.
완공 시점의 국가적 상황과 불사 추진 배경은 통일신라 중후기의 정치·사회적 맥락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소장 위치
성덕대왕신종은 현재 국립경주박물관 야외 전시장에 설치·보존되고 있습니다.
1915년 구(舊) 경주박물관으로 옮겨진 뒤, 1975년 신축 이전에 맞춰 현재 자리로 이안되었습니다.
이전·전시 동선의 변화는 근대 이후 문화재 보존 체계 정비 및 박물관학적 관리 전환과 맞물립니다.
제원과 구조
치수와 무게
성덕대왕신종의 높이는 3.66m, 입지름은 2.27m이며, 두께는 11∼25cm 범위로 변화합니다.
1997년 국립경주박물관의 정밀 측정에서 무게는 18.9톤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러한 제원은 통일신라 금속주조기술의 정점과 음향공학적 설계를 반영합니다.
음통과 용뉴
이 종의 상부에는 울림을 증폭·조정하는 음통(音筒)이 설치되어 있는데, 우리나라 동종에서만 나타나는 독자적 구조로 평가됩니다.
종을 매다는 고리인 용뉴(龍鈕)는 용머리 형상으로 조각되어 장식성과 구조적 기능을 동시에 구현합니다.
음통과 용뉴의 결합은 구조-음향-미학이 통합된 신라 범종 공예의 핵심 특징입니다.
유곽·당좌·입구 형상
종 어깨 아래 네 곳에 연곽(蓮廓)이 둘러싼 유곽이 배치되고, 그 안에는 9개의 유두(乳頭)가 돌출되어 시각적 리듬과 공진 특성을 형성합니다.
유곽 아래에는 두 쌍의 비천상(飛天像)이 배치되며, 그 사이에 종을 치는 당좌(撞座)가 연꽃 모양으로 설계되어 기능과 상징이 결합됩니다.
입구 하단은 꽃 모양으로 굴곡진 형상을 띠어 성덕대왕신종 고유의 조형미를 부각합니다.
성덕대왕신종 기본 제원 표
| 항목 | 내용 |
|---|---|
| 지정 | 국보 제29호 |
| 완성 연도 | 771년(혜공왕 7) |
| 높이 | 3.66m |
| 입지름 | 2.27m |
| 두께 | 11∼25cm |
| 무게 | 18.9톤(1997 정밀측정) |
| 재질 | 동종(청동 범종) |
| 구조 특징 | 음통, 용뉴, 연곽·유두, 비천상, 연꽃 당좌 |
| 현 위치 | 국립경주박물관 |
문양과 상징
비천상과 연화문
비천상은 불교적 세계관 속 천상의 음악과 공양을 상징하며, 종의 신성성과 의례적 기능을 시각화합니다.
연화문은 깨달음과 정화를 상징하여 종의 당좌·연곽 등 주요 요소에 반복적으로 적용됩니다.
문양의 배열은 상하대의 넓은 띠 장식과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통일신라 조형 감각을 대표합니다.
상하대와 꽃무늬
종 몸체 상·하단에는 넓은 띠를 두르고 그 안에 꽃무늬를 정교하게 배치하여 장식성과 위계감을 동시에 구현합니다.
문양은 구조선과 공진 지점의 시각적 안내 역할을 하며, 미적·기능적 최적화를 도모합니다.
이 체계적 배열은 대규모 주조물에서 흔치 않은 정밀한 디자인 운영을 보여줍니다.
조형미와 시대성
성덕대왕신종은 통일신라 예술의 전성기에 제작되어 금속공예·불교미술의 융합적 성취를 보여줍니다.
형상·문양·비례의 균형은 왕실 발원 대종의 위엄과 신성성을 극대화합니다.
정교한 선각과 고부조의 조합은 당시 장인의 기술력과 미의식을 증언합니다.
명문과 역사 기록
명문의 저자와 내용
종 몸통에는 1,000여 자에 달하는 명문이 새겨져 있으며, 작성자는 신라 조산대부이자 전태자사의랑 한림랑 김필해로 전합니다.
명문에는 경덕왕이 부모의 명복을 빌기 위해 종을 만들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서거하였고, 이후 종이 완성되었다는 경위가 서술됩니다.
문장은 문학성과 서각 수법 모두 뛰어나 현재까지도 손상 없이 읽히는 수준으로 전합니다.
봉덕사와 원찰
봉덕사는 태종 무열왕과 성덕왕을 기리기 위한 원찰의 성격을 띠었고, 후대로 오며 성덕왕 중심의 사찰로 성격이 변화했습니다.
황복사 제2비 등의 비편과 후대 금석문은 봉덕사 명칭과 위계 변화를 보완 증명합니다.
이 과정은 왕실 추복 불사와 국가적 결속을 위한 불교 정책의 일면을 보여줍니다.
사회·정치적 배경
경덕왕대는 안사의 난 여파, 기상이변, 제도 개혁 등 대내외적 긴장이 높았고, 왕실의 대불사는 사회 통합을 도모하는 상징 정책의 성격을 띠었습니다.
봉덕사성전 인물 배치와 관제 변동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과 장기 프로젝트의 연동을 시사합니다.
대종 주조는 기술·물자·인력 동원의 총합으로 국가 역량을 결집하는 사업이었습니다.
이전과 보존사
봉덕사 소실과 이동
봉덕사는 북천 범람으로 소실되었고, 이후 성덕대왕신종은 조선 세조 5년(1460)에 영묘사로 옮겨졌다는 기록이 전합니다.
연산군 12년(1506) 무렵에는 봉황대 아래 종각으로 옮겨져 성문 개폐와 군사 동원 신호에 쓰였습니다.
이동의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문인 기행문 등 다양한 사료를 통해 확인됩니다.
박물관 이전과 전시
1915년 경주고적보존회에 의해 구 경주박물관으로 이안되었고, 1975년 국립경주박물관 신축 이전에 맞춰 현재 위치로 옮겨졌습니다.
근대 박물관 체제로의 편입은 노천 방치 위험을 해소하고 전문적 보존·전시 환경을 제공했습니다.
전시 환경 변화는 대형 금속문화재의 장기 보존 안정성 제고에 기여했습니다.
타종과 보존 정책
1992년 제야 타종 33회 이후 균열 우려 등 보존상의 이유로 상설 타종은 중단되었고, 2001~2003년 일부 행사 타종 후 2004년 12월부터 다시 중단되었습니다.
보존 중단은 원형 보전과 구조 안정성을 중시한 결정으로 평가됩니다.
최근에는 종각 환경 개선과 보존·전시의 현대화 논의가 병행되고 있습니다.
전설과 해석
에밀레 전설의 기록
아기를 제물로 삼았다는 이른바 에밀레 전설은 삼국유사에 보이지 않고, 19세기 말 선교사 기록과 1925년 매일신보의 동화 등 근대기 문헌에서 확인됩니다.
1895년 앨런과 1901년 헐버트의 기록이 초기 문헌 증거로 자주 인용됩니다.
전설의 문헌화는 근대 매체 환경과 민간 구전의 결합 과정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일제 조작 논쟁과 반론
에밀레 전설이 일제기에 조작되었다는 주장이 있으나, 19세기 말·20세기 초 외국인 기록이 존재해 단정하기 어렵다는 반론이 제기됩니다.
헐버트 기록에는 보신각종과의 혼동 정황도 나타나 전설 수용의 혼선이 드러납니다.
중국 감숙성 대운사 종 등에 유사한 인신공양 전설이 전해진다는 비교민속학적 관찰도 논의됩니다.
문화사적 맥락
전설은 거대 공공 사업과 사회적 고통의 기억, 권력과 희생의 서사를 상징적으로 압축한 문화 텍스트로 해석됩니다.
‘에밀레’ 음의 청취는 주관적 인상과 집단적 서사 형성이 결합된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실제 주조 과정에서 인신공양이 있었음을 입증하는 사료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의의와 비교
통일신라 예술사적 의의
성덕대왕신종은 통일신라 예술 전성기의 대표작으로, 조형·장식·음향·주조기술의 총체적 성취를 보여줍니다.
왕실 발원 대종으로서 국가적 기원과 불교 신앙의 결합을 상징합니다.
명문은 당대 사회상과 사상, 문체 및 서각 기법을 전해주는 일급 금석문 자료입니다.
다른 통일신라 범종과 비교
성덕대왕신종은 상원사 동종, 청주 운천동 출토 동종과 더불어 온전한 형태로 남은 통일신라 범종 3구 중 하나로 거론됩니다.
세 범종은 규모와 문양, 음통 유무, 비천상 표현 등에서 공통성과 차이를 보여 한국 범종사의 전개를 비교 연구하는 기준점이 됩니다.
성덕대왕신종은 규모와 장식 체계에서 정점적 성격을 띤다는 평가가 일반적입니다.
세계 범종 전통과 차별성
음통의 채택, 용뉴의 조형, 연곽·유두의 배치 등은 동아시아 범종 가운데서도 한국형 범종의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비천상과 연화문을 통한 장엄은 불교 의례공간의 청각·시각적 신성화를 구현합니다.
명문을 통해 제작 발원과 시대 의식이 상세히 전하는 점도 국제 비교에서 주목됩니다.
감상과 관람 포인트
소리와 침묵의 미학
현행 보존 정책상 상설 타종은 이루어지지 않지만, 종 자체의 형태·문양·구조를 통해 음향 미학의 논리를 체감할 수 있습니다.
음통과 입지름, 두께 변화, 당좌 위치는 소리의 생성·전달·지속과 직결됩니다.
‘일승원음’의 이상은 종을 통해 모두에게 닿는 깨달음의 소리를 표상합니다.
조형 디테일 관찰
용뉴의 조각 수법, 연곽 내 유두 배열, 비천상 자세와 의습 표현을 차례로 관찰해 보시기 바랍니다.
상하대 띠의 문양 연속성과 당좌의 연꽃무늬는 구조와 장식의 통합을 보여줍니다.
입구부의 꽃모양 굴곡은 이 종의 독자적 실루엣을 완성합니다.
동선과 배치
현재의 전시 배치는 대형 야외 금속문화재의 안정적 보존을 전제로 관람 동선을 설계한 결과입니다.
주변 경관과의 조화를 통해 신라 왕경의 역사적 맥락을 간접 체험할 수 있습니다.
박물관 시설 개선과 종각 환경 논의는 향후 관람 경험의 질을 높일 여지가 있습니다.
연구와 교육 활용
금속 주조사 연구
성덕대왕신종은 청동 합금 비율, 주조·냉각·응력 분포 등 과학적 분석의 대표 사례입니다.
대형 주조물의 결함 제어와 장기 보존 관련 연구에도 핵심 자료로 쓰입니다.
정밀 계측 자료는 음향-구조 연계 모델링을 가능케 합니다.
불교미술·도상학
비천상과 연화문, 상·하대 문양 체계는 신라 불교미술 도상학 교육의 모범 사례입니다.
문양의 상징성은 불교 교리와 의례의 시각화 전략을 읽는 단서가 됩니다.
명문은 발원과 신앙, 정치 이데올로기의 상관관계를 해석하는 텍스트입니다.
역사교육 콘텐츠
봉덕사 소실, 이동, 박물관 편입의 서사는 문화재 보존사의 전개를 보여줍니다.
에밀레 전설의 문헌화 과정은 구전-근대 매체의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교육 사례입니다.
타종 중단과 보존 정책은 문화재 관리의 윤리와 과학을 토론하게 합니다.
방문 정보와 팁
어디에서 볼 수 있나요
국립경주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자유 관람이 가능합니다.
관람 시 빛의 방향에 따라 문양의 대비가 달라지므로 시간대를 고려하시면 좋습니다.
전시 해설 자료와 연계 전시를 함께 보시면 이해가 깊어집니다.
무엇을 먼저 볼까요
상부의 용뉴와 음통 구조를 먼저 관찰한 뒤, 유곽·비천상·당좌의 배치로 시선을 내려오면 전체 체계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입구부의 꽃모양 굴곡과 비례를 마지막으로 확인하면 조형미의 정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명문 판독 패널이 제공될 경우 반드시 함께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보존 예절
타격이나 접촉은 금지되며, 안전 거리를 유지해 관람해야 합니다.
사진 촬영 시 반사광을 활용하면 문양의 음영이 잘 드러납니다.
야외 전시 특성상 기상 상황에 유의해 관람 계획을 세우시면 좋습니다.
결론적 의의
성덕대왕신종은 조형·음향·문자·신앙을 아우르는 통일신라의 총체 예술이자 국가적 기원의 상징물입니다.
오늘날까지 전승된 명문과 완형의 구조, 엄정한 보존은 고대와 현재를 잇는 대표 문화유산의 모범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