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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히스툰 비문 : 고대 페르시아의 다국어 기념비와 쐐기문자 해독의 열쇠

by 지식한입드림 2025. 6. 7.

베히스툰 비문은 이란 서부 케르만샤주의 베히스툰 산 절벽에 새겨진 아케메네스 왕조 다리우스 1세(재위 기원전 522–486년)의 다국어 비문이다. 높이 100m의 절벽에 위치한 이 기념비는 고대 페르시아어, 엘람어, 바빌로니아어(아카드어)로 동일한 내용을 기록한 인류 최초의 삼중 언어 비문으로, 19세기 쐐기문자 해독의 결정적 단서가 되었다. 200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고대 근동 역사 연구의 로제타 스톤으로 평가받는다.

역사적 배경과 제작 의도

다리우스 1세의 정통성 확립

다리우스 1세는 아케메네스 왕조의 왕위를 계승한 과정에서 19건의 반란을 진압했으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기원전 520년경 베히스툰 비문을 제작했다. 비문은 왕위 찬탈자 가우마타를 처단하고 제국을 통합한 과정을 서술하며, "아후라 마즈다의 은총으로 왕이 되었다"는 신권정치 이데올로기를 강조한다.

전략적 위치 선택

비문이 위치한 베히스툰 산은 바빌론과 엑바타나(현 하마단)를 연결하는 고대 무역로의 요충지였다. 높은 절벽에 새겨진 것은 통치자의 권위를 시각적으로 과시하기 위한 의도로 해석된다.

비문의 구조와 내용

시각적 구성

  • 부조: 다리우스 1세가 가우마타를 발 아래 깔고 있는 모습을 중심으로, 9명의 반란군 수장이 묶인 채 줄지어 서 있다. 상단에는 조로아스터교의 최고신 아후라 마즈다가 날개 달린 원반 위에 묘사되었다.
  • 텍스트: 총 1,200행에 달하는 글은 3개 언어로 작성되었으며, 고대 페르시아어(414행), 엘람어(593행), 바빌로니아어(112행)로 구성된다.

주요 서사

  1. 다리우스의 왕위 계승 정당성 강조
  2. 19개 반란 진압 과정의 상세한 기록
  3. 아케메네스 제국의 행정 체계와 법적 조치 설명
  4. 아후라 마즈다에 대한 경의 표명

학문적 중요성

쐐기문자 해독의 돌파구

1835년 영국 군인 헨리 롤린슨이 절벽에 매달려 탁본을 제작한 후, 고대 페르시아어를 첫 번째로 해독했다. 이를 기반으로 엘람어와 바빌로니아어가 차례로 해석되며 수메르·아카드 문명 연구가 본격화되었다. 롤린슨의 작업은 1846년 완료되어 《왕립아시아학회지》에 발표되었으며, 이 업적으로 그는 기사 작위를 받았다.

고대사 재구성의 증거

  • 함무라비 법전(기원전 1750년)과 길가메시 서사시(기원전 2100년) 등 메소포타미아 문헌 해독 가능
  • 아케메네스 제국의 행정 문서와 《아베스타》 종교 텍스트 비교 분석의 기초 마련
  • 창세기 노아 홍수 설화의 메소포타미아 기원 입증

기술적 특징과 보존 현황

제작 기법

  • 석회암 절벽을 평평하게 다듬은 후 갈대 스타일러스로 쐐기문자를 새김
  • 표면을 광택 처리해 침식 방지

보존 노력

  • 1904년 이란 문화재청이 첫 보수 작업 시행
  • 2012년 3D 레이저 스캐닝을 통한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 2023년 MIT 연구팀이 AI를 활용해 훼손된 부분 복원 시도

문화적 영향

현대 예술과 상징성

  • 이란 화가 술레이만 알리가 201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비문의 쐐기문자를 추상화한 설치미술 전시
  • NASA 보이저 금제 음반(1977년)에 수메르어 인사말 "안 살람(an šalam)" 수록

정치적 활용

  • 사산 왕조(224–651년)와 페헤비 왕조(1925–1979년)가 국가 정체성 강화를 위해 비문 이미지 차용
  • 1979년 이란 혁명 후 이슬람 공화국 정부가 비문을 "이란 다문화주의의 상징"으로 재해석

결론: 문명 교류의 살아있는 증거

베히스툰 비문은 단순한 왕의 자찬을 넘어 고대 제국의 다문화적 통치 철학을 구현한다. 3개 언어의 병기는 제국 내 다양한 민족의 공존을 반영하며, 쐐기문자 해독을 통해 인류는 5,000년 전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현재 이 비문은 이란 국립박물관과 영국 박물관에 분산 보관된 점토판들과 함께, 디지털 기술을 통해 새로운 생명력을 얻고 있다. 고고학적 가치와 함께, 권력과 기록의 관계를 성찰하는 현대적 교훈을 제공하는 인류 공동의 유산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