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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춘금 : 일제강점기 조선인 최초로 일본 중의원 의원에 당선된 친일파 인물

by 지식한입드림 2025. 2. 9.

박춘금은 일제강점기 조선인 최초로 일본 중의원 의원에 당선된 인물로, 친일 활동과 정치적 행보로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의 생애와 사회적 영향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박춘금의 생애

초기 생애

  • 출생과 성장: 박춘금은 1891년 4월 17일, 경상남도 밀양시 삼문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서당에서 천자문을 읽었을 뿐, 정식 교육을 받지 못한 무학이었습니다.
  • 일본 이주: 1908년 무일푼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고베 등지에서 고용살이, 자전거 직공, 탄광갱부, 토목 노무자 등 다양한 육체노동을 하며 일본어를 익혔습니다.

정치 활동

  • 상애회 조직: 1921년, 박춘금은 재일조선인 노동자들의 사상 통제를 목적으로 일본 경보 당국과 총독부의 후원을 받아 '상애회'를 조직하였습니다. 이 단체는 노동자들의 교화와 구제를 표방했으나, 실제로는 일본인 기업주 편에서 노무자를 학대하고 압박하는 폭력 착취 단체였습니다.
  • 일본 중의원 의원: 1932년, 박춘금은 일본 중의원 의원에 당선되어 조선인 최초로 일본 제국의회에 진출하였습니다. 그는 조선인에게 참정권을 부여할 것을 주장하며, 조선과 일본 간의 차별을 비판하였습니다.

박춘금의 사회적 영향

친일 활동

  • 반민족 행위: 박춘금은 일제의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하였으며, 노동운동과 독립운동을 탄압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의 활동은 많은 이들에게 비판을 받았습니다.
  • 폭력 단체 운영: 그가 조직한 상애회는 재일조선인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노동쟁의와 소작쟁의 등에서 폭력적인 방법으로 탄압하였습니다.

후손들의 재산

  • 재산 매각: 박춘금의 후손들은 그의 재산을 매각하여 부를 축적하였습니다. 특히,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100억 원대 토지를 2018년에 매각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 국가 귀속 문제: 박춘금의 재산은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국가 귀속 대상이었으나, 실제로는 국가 귀속 절차가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결론

박춘금은 일제강점기 조선인 최초로 일본 중의원 의원에 당선된 인물로, 친일 활동과 정치적 행보로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그의 생애와 활동은 당시 조선 사회와 일본 제국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례를 제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