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와(令和) 시대는 2019년 5월 1일 나루히토 천황의 즉위와 함께 시작된 일본의 현행 연호로, 일본 헌정사상 최초로 천황의 생전 퇴위로 개원된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이 시대는 단순한 연호 변경을 넘어 일본 사회의 새로운 출발점이자 국제화 시대에 맞는 문화적 정체성의 재정립을 의미한다. 레이와는 일본 최초의 운문집인 만엽집에서 인용된 최초의 일본 고전 출전 연호로서, "사람들이 아름다운 마음을 서로 모아서 문화를 태어나게 하고 키우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레이와 시대의 개원 배경과 과정
아키히토 천황의 생전 퇴위 결정
레이와 시대의 출발점은 아키히토 천황의 생전 퇴위 의사 표명에서 시작된다. 아키히토 천황이 퇴위의 뜻을 처음 밝힌 것은 2010년 7월 22일이었으나, 공식적인 의사 표명은 2016년 8월 8일 일본 궁내청이 발표한 사전 녹화 영상메시지를 통해 이루어졌다. 당시 82세였던 아키히토 천황은 "고령이 되면서 여지껏 해오던 공무를 완수하지 못할 것을 우려한다"며 "공무에 차질이 생기는 일 없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길 바란다"는 취지로 나루히토 친왕에게 양위하겠다는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러한 생전 퇴위는 일본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로, 기존의 천황 서거에 따른 연호 변경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였다. 2019년의 레이와 시작은 이전 천황의 '은퇴'로 시작되어 1989년 쇼와천황의 사망으로 인한 '자숙'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으며, 오히려 들뜬 기운이 감돌았다. 일본 사회는 오랜 경기침체를 극복하고 국제 사회에서 재도약할 것이란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다.
연호 결정과 발표 과정
아키히토의 퇴위 표명으로 일본 정부는 기존 연호인 헤이세이를 새것으로 바꾸는 개원 작업에 착수했다. 하지만 이전과는 달리 일본에서 사무자동화와 인터넷 전산화가 이뤄져 새 연호에 대한 전산화 준비 기간을 확보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에 일본 헌정사상 처음으로 새 연호가 공식 개원일인 2019년 5월 1일으로부터 한 달 전인 4월 1일에 발표하게 되었다.
2019년 4월 1일 일본 총리 관저에서 개최된 '연호에 관한 간담회'에는 방송, 언론, 학계, 경제계, 법조계, 문학계 등 일본 각계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간담회에서 제시된 연호 후보군에는 '레이와' 외에도 '에이코'(英弘), '규카'(久化), '고시'(広至), '반나'(万和), '반포'(万保) 등 총 6개 안이 있었으며, 연호를 출전한 원문의 고전은 일본 고전과 중국 고전이 각각 세 개씩이었다.
레이와 연호의 어원과 의미
만엽집에서의 출전
레이와는 일본 역사상 최초로 중국의 고전이 아닌 일본의 고전 연호로, 일본 최초의 운문집인 만엽집에서 인용하였다. 구체적으로는 만엽집의 '매화나무 꽃' 노래 32수의 서문에 있는 "初春令月 氣淑風和"(초춘령월 기숙풍화)에서 따왔다. 이 구절의 현대 일본어 번역은 "時は令月、空気は美しく、風は和やかで、梅は鏡の前の美人が白粉で装うように花咲き、蘭は身を飾る衣に纏う香のように薫らせる"이며, 한국어로는 "날씨가 맑고 바람이 부드럽게 부는 새봄에 매화는 거울 앞의 미인이 백분으로 치장하듯이 꽃을 피우고 난초는 몸을 치장하는 옷에서 나는 향기처럼 달콤한 향기를 낸다"로 번역된다.
그러나 만엽집의 해당 구절은 《문선》에 수록된 중국 후한의 시인 장형의 부인 〈귀전부〉 중 "仲春令月 時和氣淸"을 참고한 구절로, 결국은 중국의 고전을 한 다리 걸쳐 인용한 모양이 되었다는 지적도 있다.
연호의 의미와 해석
'레이와(令和)'에서 '레이(令)'는 '아름다운(beautiful)'을, '와(和)'는 '조화(harmony)'를 각각 의미한다. 아베 총리는 새 연호 발표 직후 "레이와는 사람들이 아름다운 마음을 서로 모아서 문화를 태어나게 하고 키우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또한 "문화나 자연과 같은 나라(일본)의 특색을 다음 세대에 이어나감과 동시에, 혹독한 추위 뒤에 피는 매화처럼 다가올 날들에 대한 희망과 함께 각자의 꽃을 크게 피울 수 있는 그런 일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덧붙였다.
첫 번째 글자인 '레이(令)'가 '명령'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논란도 있었다. 아베 내각이 우경화 정책을 펼치고 있는 상황에서 '명령', 'order'라는 단어 자체가 예민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에 대해 나카니시 스스무 교수는 'order'에는 명령 외에 '질서', '규율'이라는 의미도 있다며, 그것이 '사역'을 의미한다고만 말하는 것은 매우 편협한 생각이라고 반박했다.
레이와 시대의 특징과 사회적 변화
디지털화와 현대적 특성
레이와 시대는 일본 사회의 급속한 디지털화와 함께 시작되었다. 연호 발표 과정에서도 처음으로 전산화 준비 기간을 고려하여 한 달 전 미리 발표하는 등 현대적 특성을 보였다. 이는 과거의 연호 변경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일본 사회의 기술적 진보를 반영한다.
COVID-19 팬데믹은 레이와 시대 초기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되었다. 레이와 2년(2020년) 5월부터 각종 코로나19 관련 정책과 대응이 시행되었으며, 이는 새로운 시대의 첫 번째 큰 시련이자 변화의 계기가 되었다.
국제화와 문화적 정체성
레이와 연호가 만엽집에서 인용되었다는 점은 일본의 문화적 정체성 재확립 의지를 보여준다. 1,200여 년 전에 편찬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집에서 연호를 따온 것은 사상 처음의 일로, 일본 고유의 문화적 전통을 강조하면서도 국제화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정체성을 모색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들 와카가 다양한 외국 문화를 받아들였던 다자이후에서 지어졌다는 사실은 의미가 깊다. 그러한 의미에서 레이와의 글자에는 낙관적인 사조와 견고한 국제 관계, 국제화, 그리고 외국 문화에 대한 경의를 내포하고 있는 일본 사회와 앞으로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레이와 시대의 사회적 반응과 영향
국민들의 열광적 반응
레이와 시대 개막을 앞두고 일본 전역에서는 다양한 축제와 행사가 벌어졌다. 2019년 4월 30일에는 '오늘은 무엇을 해도 헤이세이 마지막'이라면서 일본 전역에 다양한 이벤트가 벌어졌다. '平成', '令和'가 새겨진 과자, 열차표, 스템프가 판매되고 '아리가또 헤이세이(고마워 헤이세이)', 그리고 '요오코소 레이와(반가워 레이와)'를 외치는 많은 행사가 열렸다.
아키히토 일왕 퇴위와 함께 종료되는 헤이세이 시대에 작별을 고하고 레이와 시대를 맞기 위해 수많은 일본 시민들이 30일 자정께 거리로 몰려나왔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거리에 모인 시민들은 자정을 넘기는 순간 "3, 2, 1, 레이와!"라고 카운트다운을 외치며 레이와 시대 개막을 맞이했다. 카운트다운 직후 시민들 사이에선 "고마웠어, 헤이세이", "잘 부탁해, 레이와" 등의 인사말이 오갔다.
정치적 파급효과와 사회 변화
레이와 시대는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변화의 시기가 되었다. 제1 야당인 입헌민주당은 지난해 총선 슬로건으로 '레이와 데모크라시'를 뽑아 들였다. 레이와를 기점으로 다이쇼의 민주주의를 다시 일깨우겠다는 목표였다. 1910년대부터 십수 년에 걸친 '다이쇼 데모크라시'는 군부 정권과 파벌 정치에 들고 일어난 민중이 기존의 사회구조와 질서에 도전한 민주주의 개혁운동이었다.
레이와 시대 개막을 코앞에 두고 치러진 보궐선거에서는 집권 자민당이 참패하여 아베의 '보궐선거 불패신화'가 무너지는 등 정치적 변화의 조짐을 보였다. 이는 레이와 시대가 조화가 아니라 갈등으로 치달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레이와 시대의 현재와 미래 전망
스포츠와 문화 발전
레이와 시대에는 다양한 스포츠 및 문화 행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2025년 3월에는 도쿄 체육관에서 참가 체험형 파라 스포츠 이벤트 "챠레스포!TOKYO"가 개최되어 약 2,700명이 참여했다. 이러한 행사들은 "장애가 있는 사람도 없는 사람도, 함께 파라 스포츠를 즐기자"는 취지로 진행되어 레이와 시대의 포용적 사회 구현 의지를 보여준다.
연호 사용 현황과 사회적 정착
레이와 시대가 시작된 지 6년이 지난 현재, 이 연호는 일본 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했다. 연대를 표시할 때 '주로 원호'를 쓴다는 이가 34%, '원호와 서력 반반' 쓴다는 이가 34%로, 일상적으로 '연호'를 쓰는 이가 70%를 차지한다. 정부문서는 물론이고, 일상적인 서류 등에 연호가 쓰이며, 자연스럽게 일상적으로 연호 사용자가 되고 있다.
2019년 5월 1일부터 시작된 레이와 시대는 현재 레이와 7년(2025년)에 접어들었다. 도쿄올림픽이 개최된 2020년은 레이와 2년이었으며, 이제 레이와는 일본의 새로운 시대를 대표하는 연호로 자리 잡았다.
결론
레이와 시대는 일본 역사상 여러 면에서 독특한 의미를 갖는 시대이다. 천황의 생전 퇴위로 시작된 최초의 연호이자, 일본 고전에서 처음 인용된 연호로서 일본의 문화적 정체성과 국제화 의지를 동시에 보여준다. "아름다운 조화"라는 의미처럼 레이와 시대는 전통과 현대, 일본적 특성과 국제성, 개인과 공동체의 조화를 추구하는 시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COVID-19 팬데믹, 정치적 변화, 사회적 포용성 확대 등 다양한 도전과 변화를 겪으면서도 레이와 시대는 일본 사회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향후 이 시대가 진정한 의미에서 "사람들이 아름다운 마음을 서로 모아서 문화를 태어나게 하고 키우는" 시대가 될 수 있을지는 앞으로의 과제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