냅코 프로젝트는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미국 전략첩보국(OSS)이 주도한 한반도 침투 특수작전이었습니다.
냅코 프로젝트란?
작전 목적과 배경
OSS는 1944년 말부터 1945년 초까지 한인 공작원들을 한반도에 침투시켜 대일전 승리를 도모하고자 했습니다. 주요 목표는:
- 한반도 내 첩보 지하조직 구축
- 무장 저항운동 전개
- 일본 본토 침투를 위한 교두보 확보
작전 구성
공작원 구성
- 재미 한인 민간인과 군인
- 미국 내 포로수용소 출신 한인
- 버마에서 탈출한 학병 출신 한인
훈련 내용
- 훈련장소: 산타 카타리나 섬의 Howland's Landing과 Forth of July Cove
- 교육과목: 사격, 비무장 전투법, 지도 읽기, 파괴, 무전, 촬영, 낙하산 훈련, 선전, 일본인 특성 교육
작전 결과
1944년 7월부터 1945년 8월까지 4개의 침투조로 편성되어 진행되었으나, 일본의 항복 선언으로 실제 침투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1945년 9월에 공식 종료되었습니다.
역사적 의의
냅코 프로젝트는 표면적으로는 미국의 대일전 승리를 위한 특수작전이었지만, 참여한 한인들에게는 조국 독립을 위한 항일무장독립운동의 일환이었습니다. 이들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조국 독립을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에서 한국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냅코 프로젝트의 주요 목표
전략적 목표
정보수집 활동
- 한반도 내 일본군 주둔 현황과 군사시설에 대한 정보 수집
- 적의 군사력과 전략적 취약점 파악
- 한반도 내 지하정보망 구축
군사작전 수행
- 일본군 시설과 보급선에 대한 파괴공작 수행
- 한반도 내 무장 저항운동 전개
- 일본 본토 침투를 위한 교두보 확보
심리전 및 선전활동
- 한국인들의 항일의식 고취
- 일본군의 사기를 저하시키기 위한 선전활동 수행
- 연합군의 승리를 위한 한반도 내 우호적 분위기 조성
이러한 목표들은 궁극적으로 태평양전쟁에서 연합군의 승리를 앞당기고, 한반도 내 일본의 군사력을 약화시키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유일한 박사가 냅코 프로젝트에서 수행한 주요 역할
임무와 신분
공식 직책
- 암호명 'Agent A'로 활동
- 총 6개조 중 제1조 조장으로 임명
특수 훈련 참여
- 50세의 고령에도 로스앤젤레스 연안의 카타리나 섬에서 약 4개월간 훈련 수행
- 유격전, 낙하산 훈련, 폭파훈련 등 모든 특수 훈련을 완벽히 소화
작전 기여
조직망 활용
- 자신의 사업체인 유한무역회사의 조직망을 작전에 활용하는 것을 승인
- 한반도 내 지하조직 구축을 위한 기반 제공
역사적 의의
유일한 박사는 군사작전의 기밀을 지키기 위해 생전에 이 활동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으며, 그의 사후 기밀유지기한 30년이 지난 후에야 그의 활약상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만약 전쟁이 일찍 끝나지 않았다면, 그의 조직망을 통해 한반도에서 프랑스의 지하저항운동과 같은 활동이 전개되었을 것으로 평가됩니다.
유일한 박사의 독립운동
초기 독립운동
한인자유대회 참여
- 1919년 3.1운동 직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한인자유대회에 참가
- 「한국 국민의 목적과 열망을 석명하는 결의문」을 작성하고 낭독
- 이 결의안은 훗날 대한민국 건국의 지침이 됨
군사 조직 활동
맹호군 창설
- LA에서 재미한인들로 구성된 맹호군 창설의 주역으로 활동
- 1942년 임시정부 군사위원회의 인준을 획득
- 캘리포니아주 정부로부터 공식 인가를 받음
한인 국방경위대
- 김호 등 재미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로스앤젤레스에 조직
- 무장 및 군자금을 지원
외교 활동
국제 활동
- 1941년 하와이 호놀룰루 해외한족대회 집행부 위원으로 활동
- 1942년 미 육군 전략처(OSS) 한국담당 고문으로 활약
- 전후문제 논의를 위한 IPR총회에 한국대표로 참석
사업을 통한 독립운동
유한양행 활용
- 미국과 중국에 설립한 유한양행 출장소를 수출 전초기지이자 비밀독립운동의 장소로 활용
- 기업 활동을 통해 식민지 조선의 위생·보건 향상을 도모
결론
냅코 프로젝트는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미국 전략첩보국이 주도한 한반도 침투 특수작전으로, 한반도 내 첩보활동과 무장저항운동을 목표로 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서 유일한 박사는 'Agent A'라는 암호명으로 제1조 조장을 맡아 50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모든 특수훈련을 완수했으며, 자신의 기업 조직망을 작전에 활용하는 등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유일한 박사는 냅코 프로젝트 외에도 한인자유대회 참여, 맹호군 창설, 한인 국방경위대 조직 등 다양한 독립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성공한 기업인이었음에도 개인의 안위보다 조국 독립을 우선시했으며, 기업 활동과 독립운동을 연계하여 효과적으로 전개한 그의 행적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애국심의 실천적 의미를 보여주는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