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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을동 근황 : 독립운동가 김좌진 장군의 손녀이자 배우와 정치인으로 활동한 대한민국 현대사의 살아있는 증인

by 지식한입드림 2025. 11. 20.

김을동의 출생과 가족 배경

김을동은 1945년 10월 10일 서울 종로에서 태어났습니다. 대한민국이 광복을 맞이한 해에 태어난 그녀는 독립운동가 김좌진 장군의 손녀이자 전 국회의원 김두한의 딸로, 대한민국 인명사전에 4대가 등재된 명문가의 일원입니다. 할아버지 김좌진 장군은 1920년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독립운동가로,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중장으로 추서되었습니다. 아버지 김두한은 제3대와 제6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야당 정치인으로 활동하면서 이승만과 박정희 정권에 저항했던 인물입니다.

김을동은 서울재동국민학교, 풍문여자중학교, 풍문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으나 중퇴했습니다. 이후 고려대학교 자연과학대학원을 수료하였습니다. 그녀의 아들은 배우 송일국이며, 며느리는 판사로 재직 중인 정승연입니다. 손자로는 세쌍둥이 송대한, 송민국, 송만세가 있어 '삼둥이 할머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명문가의 유산과 가족의 희생

김을동은 MBC '기분 좋은 날'에 출연하여 가족사를 공개하며 "아버지 김두한을 8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얼굴을 볼 수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어머니는 바깥으로만 나돈 아버지 대신 삯바느질로 생계를 꾸렸으며, 전기 대신 사용했던 숯의 연기를 평생 맡다가 만성 가스 중독으로 60세가 조금 넘은 나이에 돌아가셨습니다. 김을동은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내조하기 위해 할머니와 어머니는 대대로 삯바느질을 하며 살았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4대가 역사에 남긴 발자취

김을동의 가문은 대한민국 인명사전에 4대가 모두 등록된 보기 드문 집안입니다. 할아버지 김좌진 장군, 아버지 김두한, 본인 김을동, 아들 송일국까지 모두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진기록을 세웠습니다. 특히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서 김을동은 백야 김좌진장군 기념사업회를 이끌며 할아버지의 업적을 기리고 독립운동사를 바로 세우는 데 헌신하고 있습니다.

연기자로서의 김을동

방송계 입문과 성우 활동

김을동은 1963년 연극배우로 데뷔하여 연예계에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1964년에는 뮤지컬 배우로도 활동했으며, 1967년 DBS 동아방송 3기 성우로 입사하면서 본격적인 방송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68년에는 TBC 동양방송 공채 성우로 이적하여 방송계에서의 입지를 다졌습니다.

45년간의 배우 생활

김을동은 약 45년간 연기자로 활동하며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습니다. 그녀의 대표작으로는 드라마 '전설의 고향', '용의 눈물', '가보면 알 거야', '사랑은 지금부터 시작이야', '김치 치즈 스마일', '반올림 3', '며느리 전성시대' 등이 있습니다. 영화로는 '마파도 1, 2', '카리스마 탈출기' 등에 출연하여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김을동은 본인의 말에 따르면 "간호사를 빼고 다 맡아본 것 같다"고 할 정도로 다양한 역할을 소화했습니다. 그녀는 유동근, 박상원, 전광렬 등 연기자들에게 연기 지도를 해준 일화로도 유명하며, "김을동 사단"으로 불렸습니다.

배우 활동 은퇴

김을동은 2008년을 끝으로 배우 활동을 사실상 은퇴했습니다. 이는 같은 해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정치인 활동에 집중하기 위한 결정으로 추측됩니다. 그녀는 한국방송공사 극회 부회장, 한국방송연예인노조 집행위원 등을 역임하며 연예계 원로로서의 위상을 확립했습니다.

정치인으로서의 김을동

정치계 입문과 서울시의원

김을동은 1995년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서울 동대문구 제3선거구에 출마하여 서울특별시에서 최다득표를 얻으며 서울시의회 의원에 당선되었습니다. 이는 45년간의 배우 생활을 마치고 새로운 인생 2막을 여는 전환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서울시의원 재임 중 민주당을 탈당했으며, 1996년 제15대 총선 출마를 위해 서울시의원직을 사퇴했지만 낙선했습니다.

국회의원 도전과 좌절

김을동은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의 자유민주연합 지역구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습니다.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는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지역에 출마했지만 재차 낙선의 고배를 마셨습니다. 이처럼 국회의원의 꿈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김을동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제18대 국회의원 당선

2008년 제18대 총선에서 김을동은 친박연대의 비례대표 5번에 이름을 올려 당선되었습니다. 친박연대는 한나라당을 탈당한 친박근혜 성향 의원들이 만든 정당으로, 김을동은 이를 통해 여의도에 입성했습니다. 이로써 아버지 김두한 전 의원에 이은 2대째 정계 진출이자, 헌정 사상 최초의 부녀 국회의원이 탄생했습니다.

제18대 국회에서 김을동은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독도영토수호대책특별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했습니다. 2011년 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SK커뮤니케이션즈의 개인 정보 3,500만 건 해킹 사고의 원인이 내부 보안 시스템 부실에 있음을 밝혀내 전 국민적 관심을 받았습니다.

제19대 국회의원 재선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김을동은 서울특별시 송파구 병 선거구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습니다. 이 지역은 24년 동안 민주당 후보가 당선된 야당의 텃밭이었으나, 김을동은 이를 뒤집고 승리를 거두며 '새누리당 광개토여왕'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이로써 아버지 김두한 전 의원에 이은 최초의 부녀 재선 국회의원이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제19대 국회에서 김을동은 새누리당 최고위원으로 선출되어 당의 핵심 지도부에 올랐습니다. 2012년 6월부터 2014년 8월까지는 한국여자야구연맹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직 국회의원의 체육단체장 겸직 금지 권고에 따라 사임했습니다.

제20대 총선 낙선과 정치 활동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 김을동은 서울 송파구 병 선거구에 출마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의 남인순 후보에게 약 6,000표 차로 밀리며 낙선했습니다. 이후 2016년 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김을동은 김무성과 함께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바른정당에 합류했습니다. 2017년 제19대 대선에서는 유승민 후보를 지원했으며, 같은 해 6월 바른정당 당원대표자회의 부의장으로 선임되었습니다.

2017년 11월 2차 바른정당 탈당사태 때 김을동은 바른정당을 탈당하고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했습니다. 이후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미래통합당 후보들의 지원 유세에 나섰으며, 아버지의 지역구였던 종로구에 출마한 황교안 대표의 지원유세에도 참여했습니다.

독립운동가 후손으로서의 활동

백야 김좌진장군 기념사업회

김을동은 할아버지 김좌진 장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백야 김좌진장군 기념사업회를 설립하고 회장으로 활동했습니다. 10년간 집까지 팔아가며 기념사업회를 운영한 그녀는 중국 헤이룽장성 하이린시에 김좌진 장군 기념관을 건립했습니다. 김을동은 "할아버지는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은 독립유공자인데도 기념사업회 하나 없었다"며 사비를 털어 기념사업에 헌신했습니다.

김을동은 압구정동의 65평 아파트를 팔고 월세 100만원짜리 집에 살 정도로 기념사업에 전념했으나, 아들 송일국이 드라마 '주몽'으로 성공하면서 겨우 집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 당국과의 냉랭한 관계 속에서도 공안들의 감시를 받으며 기념관을 건립한 그녀의 노력은 동료 의원들로부터 큰 찬사를 받았습니다.

독립운동사 바로 세우기

김을동은 초등학교 때부터 역사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법안을 발의하며 역사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녀는 "자라나는 세대에게 자국의 역사를 제대로 알려줘 민족혼을 심는 일은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책임이자 의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일제강점기와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일에도 적극 나섰습니다.

김을동은 김좌진 장군이 17세 때 고향인 충남 홍성에서 수십만 평의 전답을 노비들에게 나눠주고 45명의 집안 노비문서를 불태운 계몽사상가였다고 강조했습니다. 18세 때는 집에 '호명학교'를 세웠으며, 만주로 떠나 일본군과 싸우면서도 주둔하는 곳마다 학교를 세워 20곳 넘게 세운 학교 중 조선족실험소학교 한 곳만 남아있다고 밝혔습니다.

독립유공자 처우 개선 활동

김을동은 독립유공자 본인과 유족에 대한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녀는 "독립유공자의 후손들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다고 하더라도 그분들의 후손들이 지금 살아남은 사람들이 거의 없다"며 처우 개선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또한 "대한민국이 잘되기 위해서는 국가를 위해 희생봉사한 사람이 우대를 받아야 하고, 그런 세상이 되어야 세계의 중심국가로 설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김을동의 최근 활동과 근황

2020년대 이후 활동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김을동은 미래통합당 후보들의 지원 유세에 나섰습니다. 2021년에는 영화 '소년 김두한' 관련 활동을 하며 백신을 두 번째까지 다 맞았다고 밝혔습니다. 2022년과 2023년에는 청산리대첩 기념식과 백야 김좌진 장군 추모제에 참석하며 독립운동가 후손으로서의 역할을 지속했습니다.

2024년에는 국민의힘 대변인이 김좌진 장군을 공산주의와 연결 짓자 "할아버지가 공산당원에 암살당했는데 무슨 소리냐"고 강력히 반박했습니다. 같은 해 제22대 총선에서는 전국을 돌며 국민의힘 후보자들의 유세지원에 나섰습니다. 2025년에는 백야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 상임이사로 활동하며 청산리대첩 승전 105주년 기념식에 참석했습니다.

백야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 상임이사

김을동은 현재 백야김좌진장군 기념사업회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20년부터는 이사장직에서 물러나 상임이사로 재직하며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매년 10월 25일 청산리 대첩의 마지막 전투가 벌어진 날에 맞춰 추모제가 열리며, 김을동은 이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있습니다.

기념사업회는 김좌진 장군의 유적지 복원과 민족정신 및 사상 연구 발표, 기념행사 전개, 독립유공자 및 유가족 지원 활동 등을 펼치고 있습니다. 김을동은 중국 동북3성 북만주 일대에서 대학생을 대상으로 청산리대장정을 개최하며 역사 교육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가족과의 관계

김을동의 아들 송일국은 2025년 ENA '최화정 김호영의 보고싶었어'에 출연하여 어머니와 아내의 독특한 관계를 공개했습니다. 송일국은 "엄마가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 오랜 꿈이었는데 가족들이 모두 반대했지만 아내만 어머니의 꿈을 지지했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김을동은 국회의원이 되었고, 아내는 그때 부산으로 발령받아 4년 동안 연락 한 번 안 해도 문제없었다고 전했습니다.

송일국은 또한 "어머니가 할아버지(김두한) 기념관을 짓느라 집을 다 팔고 월셋집마저 쫓겨날 신세였다"며 어려웠던 과거를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해신' 드라마로 대박이 나면서 어머니의 빚을 다 갚아드리고 지금 집도 마련해 드렸다고 밝혔습니다.

김을동의 의정 활동과 업적

주요 발의 법안

김을동은 국회의원으로 재직하면서 다양한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2012년 7월 31일에는 '공공데이터의 진흥 및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안'을, 7월 26일에는 '데이터베이스산업 진흥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7월 3일에는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대한 특별법안'을, 6월 29일에는 '정부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습니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반대

김을동 의원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에 대해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그녀는 "전범국가 일본과 무엇이 급해 여론을 무시한 채 졸속으로 한일 군사협정 체결을 처리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며 "역사성 없는 국무위원들은 퇴진하고 이명박 대통령은 한일군사협정 의결을 폐기하라"고 밝혔습니다.

국정감사 우수 의원

2011년 김을동 의원은 국정감사 우수 의원으로 선정되었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SK커뮤니케이션즈의 개인 정보 해킹 사고의 원인을 밝혀냈으며, 문화체육관광부 국감에서는 정부의 콘텐츠 산업에 대한 포상 홀대와 한류 수출 대상 제정을 촉구했습니다. 또한 전통문화예술에 대한 정부 지원의 부족과 활성화 방안을 제시하여 문화산업 종사자와 예술인들에게서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김을동과 삼둥이

복덩이 손자들

김을동에게 손자 송대한, 송민국, 송만세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2012년 3월 16일 오전 9시 삼둥이가 태어났고,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은 오전 10시에 김을동의 서울 송파구 병 새누리당 공천이 확정되었습니다. 김을동은 삼둥이를 "복덩이"라고 부르며, 정치 인생에도 삼둥이와 함께 복이 들어왔다고 믿고 있습니다.

김을동은 세쌍둥이의 이름을 '송대한', '송민국', '송만세'로 정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녀는 "요즘 나라에 충성하는 방법의 하나는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이라며 삼둥이 탄생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삼둥이가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하여 큰 인기를 끌자, 김을동은 '삼둥이 할머니'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삼둥이 인기와 정치 활동

김을동은 지역구에서 어딜 가든 '삼둥이 할머니'라고 말하고 다니는 게 더 환영받는다고 밝혔습니다. 그녀는 "대한민국 만세"라는 인사법을 사용하며 의원들과 인사를 나눴고, 2015년 새누리당 신년인사회에서도 "제가 '대한민국'하면 여러분이 '만세'라고 답해달라"고 말했습니다.

김을동은 연초에 '2015년 삼둥이 달력'을 의원실에 돌리며 손자 사랑을 과시했습니다. '김좌진 장군의 손녀'에서 '송일국의 어머니'로, 그리고 '삼둥이 할머니'로 불리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그녀는 손자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고 있습니다.

김을동의 정치 철학과 활동 방식

틈새시장 전략

김을동 최고위원은 여론이 집중되는 민감한 현안에 대해서는 언급을 자제하고, 다른 최고위원·의원들이 관심을 적게 가지는 부분을 짚어주는 '틈새시장' 전법을 펼쳤습니다. 이른바 개성 있는 발언으로 주목받았으며, 중국 어선 불법 어획, 순국선열의 날, 연평도 포격 도발 추모식 등 주로 국가안보 관련 이슈를 다뤘습니다.

문화외교 강조

김을동은 "앞으로는 문화 강국의 세대다. 외교적 차원에서도 전 세계를 향해 문화외교를 펼치는 게 필요하다"며 문화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녀는 드라마 '대장금'과 '주몽'이 중동 지역에서 80% 이상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것을 예로 들며, 한국 문화를 효과적으로 전파할 방안을 연구하고 정부와 국회에 건의했습니다.

충성 인사

김을동의 트레이드마크는 인사할 때 '충성'을 외치며 거수경례하는 모습입니다. 이는 군인 집안의 후손으로서, 그리고 국가를 위해 헌신한 가문의 일원으로서의 자부심을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독특한 인사법은 김을동을 더욱 인상 깊은 정치인으로 만들었습니다.

김을동 인생의 교훈

김을동의 인생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독립운동가의 손녀로 태어나 배우로 성공하고, 다시 정치인으로 전환하여 국회의원까지 역임한 그녀의 삶은 도전과 극복의 연속이었습니다. 집안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며, 어머니의 희생을 목격하면서도 가문의 유산을 지키기 위해 헌신한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김을동은 할아버지의 기념사업을 위해 집까지 팔았고, 아들에게 정치적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고민했으며, 독립유공자 후손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현재도 백야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 상임이사로 활동하며 역사 바로 세우기에 앞장서고 있는 그녀는 2025년 현재 만 79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구분 내용
이름 김을동 (金乙東)
출생 1945년 10월 10일 (만 79세)
출생지 서울 종로
학력 풍문여고 졸업, 중앙대 정치외교학과 중퇴
가족 할아버지 김좌진 장군, 아버지 김두한, 아들 송일국
배우 활동 1963년~2008년 (약 45년)
정치 경력 서울시의원 (1995), 제18·19대 국회의원 (2008-2016)
현재 백야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 상임이사
대표 작품 전설의 고향, 용의 눈물, 마파도
주요 업적 최초 부녀 재선 국회의원, 김좌진 장군 기념관 건립